지난주 말 TV를 통해 영화 조커를 보았다. 개봉 때부터 적잖은 논란과 화제를 몰고 온 영화라서 어떤 내용인지 못내 궁금하던 터였다. 아닌 게 아니라 끔찍하고 잔혹한 조커의 살인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사악한 범죄자를 미화했다는 논란이 나올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검찰에 오래 몸담아 왔던 필자로서는 조커가 왜 그런 광적 살인행각을 벌이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늘 그렇듯이 이런 문제의 원인은 복잡다단하다. 사회경제적, 가정환경적, 개인 심리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고담시에 살던 조커가 괴물이 된 심층적 원인 분석은 전문가들에게 맡기기로 하자. 하지만, 적어도 그 원인 중 하나는 조커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화 중반에 조커는 자기 말을 늘 건성으로 듣는 사회복지담당자를 향해 이렇게 내뱉는다. “나는 평생 내가 실제로 존재하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왔어.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단 말이야(For my whole life, I didn’t know if I even really existed. But I do, and people are starting to notice.)”라고 말이다. 존재감의 결핍은 조커의 비뚤어진 반사회적 성향을 형성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반면 서울시에 살던 김우수는 조커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천애고아였던 김우수는 나이트클럽에서 광대분장을 한 삐에로로 일하며 번 돈을 사기당하자 홧김에 방화를 해 교도소에 가게 됐다. 교도소에서 우연히 청소년 잡지를 보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여동생을 위해 책가방을 사주고 싶다는 어느 소년의 사연을 접하게 되었고, 김우수는 본인의 영치금 중 10만원을 그 소년에게 보낸다. 그리고 얼마 후 그에게 소년의 감사편지가 도착했다. 편지를 읽은 김우수는 펑펑 눈물을 흘렸다.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감사하다는 얘기를 들어본 것이다. 그 후 그의 삶은 180도로 바뀌게 된다. 출소 후 중국집 배달부를 하면서 번 월급 70만원의 대부분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기부천사가 된 것이다. 어린 소년의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가 그의 존재감을 회복시켰고, 결국 그의 인생을 변화시킨 것이다.
톨스토이의 말대로 사람은 사랑 없이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는다고 느낄 때 비로소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커와 김우수 모두 사랑결핍증 환자였다고 할 수 있다.
사랑결핍증을 치료할 수 있는 특효약은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한 인격으로 대우하고 사랑과 관심이 담긴 말을 건네는 것이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김우수를 만들 수도, 조커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고사리 손으로 쓴 어린 소년의 감사편지 한 통이 김우수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고, 고질적인 사랑결핍증을 말끔하게 치유하는 위력을 발휘하지 않았는가.
2019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올 한 해 우리 공동체에서 오고 갔던 말과 글의 온도를 잰다면 전반적으로 이전보다 차가워지고 사나워진 것 같다는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2020년 새해에는 말과 글이 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워졌으면 좋겠다. SNS에서 주고받는 말과 글이 영혼을 찌르는 뾰족한 송곳이 아니라 사랑과 관심을 실어 나르는 선물바구니가 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꽁꽁 얼어붙게 하기보다는 따스한 소통의 난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악플에 시달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등지는 청춘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김희관 변호사ㆍ전 법무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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