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정서적 자기 발전의 가능성을 제 안에 품고 태어나며, 교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기를 표현하고 가능성을 구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란 게 ‘몬테소리 교육법(The Montessori Method)’의 핵심이다.
이탈리아 의사 겸 교육학자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 1870~1952)는 자신의 교육법이자 교육철학의 실마리를 1900년대 초 어느 날 로마 인근 한 공원에서 걸인 모녀를 지켜보다가 얻었다고 알려져 있다. 구걸하느라 바쁜 어머니 곁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헌 보자기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성취감에 한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더라는 것이다. 그 표정에 밴 내면의 행복감에서 교육의 목표와 가능성을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몬테소리가 그날 본 것은 어쩌면 자신의 모습, 몬테소리식으로 말하자면 자기의 내면이었을지 모른다. 유ㆍ청소년기와 학업, 연애를 포함한 30년 삶을 관통한 몬테소리 자신의 지향을 공원의 그 아이에게 투영한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국영 담배회사의 재무담당자로 꽤 돈을 잘 벌던 아버지와 학자 아버지를 둔 덕에 좋은 교육을 받은 어머니의 외딸로 태어난 몬테소리는 여성의 핸디캡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유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1890년 고교를 우등 졸업한 20세의 그가 의대 진학을 결심한 것도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하지만 로마대 의대는 여성 입학을 거부했다. 자연대로 진학한 몬테소리는 식물학, 동물학, 실험물리학, 해부학, 유기화학 등 학위 과정을 모두 이수, 의대 편입학 자격을 갖춰 1893년 마침내, 이탈리아의 첫 여성 의대생이 됐다.
차별과 따돌림을 겪으면서도 그는 첫해 우등상을 탔고, 1896년 소아과ㆍ정신과 의사가 됐다. 대학 동창이던 한 의사와 연애를 해 아들(마리오, 1898~1982)을 낳고도 각자의 일과 연구를 위해 결혼하지 않고 다른 이성과도 결혼하지 않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남자는 약속을 어겼고, 그는 독신으로 살았다. 한 병원의 지적 장애 및 지체장애 아동 시설 환경과 처우에 충격을 받은 그는 1902년 로마대에 다시 입학해 실험심리학과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1907년 1월 6일, 로마 산로렌초 구 빈민 지역에 자신의 첫 학교이자 몬테소리 교육법의 첫 무대인 ‘어린이의 집(Casa dei Bambini)’을 열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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