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외교는 난국
‘함께 잘사는 나라’ 경제는 시스템 위기
꿈보다 현실 직시하는 유능한 국정 절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일본과 마찰이 불거진 8ㆍ15 경축사에서 한 말이니, 자주자강의 국정 의지를 함축한 얘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꺼림칙하고 불안했다. 꺼림칙했던 건 ‘지금까지 이리저리 흔들렸던 나라지만 더 이상은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식으로 앞선 역사를 은연 중 폄훼하는 대통령의 어법과, 스스로 우리를 외세에 휘둘려온 약소국으로 여기는 듯한 자조적 시각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변국들 앞에서 공연히 결기만 드러낸 것 아닌가 하는 느낌도 불안했다. 지지자들은 대통령의 선명한 자주 의지에 환호할지 모르지만, 안 그래도 민감한 외교 현안을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한창인 주변 상대국들엔 비타협적이라는 인상만 주기 십상이었다. 중국이 굴기(屈起)에 나서기 전인 1980년대 지도자 덩샤오핑은 외교정책 방향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뜻인 ‘도광양회(韜光養晦)’로 설정했는데, 우리로서는 지금이 그래야 할 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지난 한 해 대통령의 자주 의지는 곳곳에서 표출됐다. 미국엔 “동맹보다 국익”이라는 입장이 천명됐고, 일본엔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ㆍGSOMIA) 종료 카드가 강행됐다. 북한에 대해서는 독자적 제재 완화 및 대화를 위해 애썼고,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차원의 외교공간을 겨냥한 듯한 중국과의 협력 강화가 끈질기게 시도됐다.
하지만 기존 전략을 크게 뒤흔든 이런 행보는, 적어도 당장은, 잠재됐던 주변국들과의 긴장을 증폭시켜 역대 어느 정권 때보다 외세의 압력과 눈치를 심각하게 의식해야 하는 험난한 외교 상황을 초래했다. 북한은 번번이 뒤통수나 때리고, 미국의 불신과 중국의 압력에 가뜩이나 휘청거리는데, 일본까지 쿡쿡 찔러대는 통에 허리가 다 빠질 지경이 됐다.
문 대통령은 ‘다 함께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고도 했다. 하지만 뒤엉켜 버린 외교처럼, 경제 역시 말과는 달리 ‘다 같이 못 사는 나라’가 되어 2019년을 지나게 됐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의 ‘2019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는 점점 더 다 같이 못 사는 나라가 돼 가고 있는 우리의 심상찮은 현실이 반영돼 있다. 정부는 소득격차가 줄어든 점을 애써 강조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3대 핵심 분배지표가 모두 조사가 시작된 201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로 개선됐다”며 소득주도성장의 성과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홍 부총리의 자랑은 경제 전반의 위기 상황이나 악화한 가계 생활 형편을 외면한 아전인수(我田引水)에 불과하다.
우선 분배지표 개선은 ‘빛 좋은 개살구’일 가능성이 크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 증가가 지표 개선으로 이어졌다지만, 1분위 가구 평균 소득 증가분의 90% 이상이 정부 보조금 등 공적이전소득이었다. 반면 1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은 되레 8% 감소했고, 2분위 역시 성장률보다 낮은 1.7% 증가에 그쳐 서민 가계의 자주적 소득상황은 크게 악화한 게 현실이다.
나아가 가처분소득 감소는 더 심각하다. 지난해 가구 평균 가처분소득은 4,729만원으로 전년보다 1.2% 늘어났지만, 물가상승률 1.5%를 감안하면 사실상 줄었다. 실제론 그만큼 우리가 전반적으로 못 살게 됐고, 생활형편이 악화했다는 얘기다. 가처분소득 감소는 세금, 건강보험, 각종 부담금 등 비소비지출이 증가한데다, 600만 자영업자들을 포함해 조세를 실질적으로 부담하는 도시 중산층 가계의 실질소득이 전반적으로 위축됐기 때문이다.
답답한 건 나라가 이토록 위태로운데도 현 정권에서는 여전히 담대한 반성과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의 끈질긴 낙관은 현 상황을 ‘올바른 나라’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진통쯤으로 여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19년을 보내며, 국민은 이제 무지개만 그리는 공허한 ‘말잔치’보다, 현실에 기반한 유능한 ‘국정’을 더 절실히 원하게 됐다는 점을 진지하게 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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