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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 여자다움 아닌 나다움’ 어린이책 보급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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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움, 여자다움 아닌 나다움’ 어린이책 보급해요

입력
2019.12.30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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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단체 씽투창작소 남윤정 대표

성인지 감수성 키울 수 있는

‘나다움 어린이책’ 134종 선정

다양성 인정하며 공존 가치 추구

“최근 염산테러 만화 논란은

성인지 감수성 결여가 초래”

27일 서울 마포구 씽투창작소 사무실에서 만난 남윤정 대표가 '나다움어린이책' 목록으로 선정된 '이백하고도 육십구일'의 한 장면을 펼쳐 설명하고 있다. 남 대표는 "이별한 이성친구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은 이 책에서는 보통 그리워하는 주체로 여자아이를 내세운 많은 책들과 달리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섬세하고 예민한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27일 서울 마포구 씽투창작소 사무실에서 만난 남윤정 대표가 '나다움어린이책' 목록으로 선정된 '이백하고도 육십구일'의 한 장면을 펼쳐 설명하고 있다. 남 대표는 "이별한 이성친구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은 이 책에서는 보통 그리워하는 주체로 여자아이를 내세운 많은 책들과 달리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섬세하고 예민한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어떻게 아이가 이분법적인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성인지 감수성을 키울 수 있을까’ 요즘 학부모와 교사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최근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에게 염산을 뿌리는 장면을 담은 어린이용 만화책(출판사 대원키즈 발간)이 물의를 일으킴에 따라 성인지 감수성을 키워줄 교육에 대한 사회적 고민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난 27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비영리 민간단체 씽투창작소 사무실에서 만난 남윤정 대표는 “염산테러 만화 논란은 결국 창작자와 편집자들의 성인지 감수성 결여가 초래한 극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남 대표는 “인기 많은 어린이용 시리즈물에서도 여성은 보조적이거나 민폐 캐릭터로 나오는 등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가득 찬 장면이 너무나 많다”며 “상업성을 기준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이미지를 고르는 많은 어린이용 만화 콘텐츠에는 응당 들어가야 할 고민이 반영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성인지 감수성에 기초한 아동 도서를 큐레이션하는 씽투창작소는 지난 7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ㆍ롯데ㆍ여성가족부와 함께 성인지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어린이책 134종을 선정해 ‘2019년 나다움어린이책’ 목록을 발표했다. 국내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주제로 한 아동 도서 큐레이션 작업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었다.

성인지 감수성이 반영된 어린이책에 대한 절실한 요청은 일선 학교 교사들로부터 먼저 왔다. 남 대표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편을 가르는 혐오가 심각하고, 빈부 격차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어른들의 혐오가 아이들에게서 재생산되기도 한다. 이 가운데 교사들에게서 지식학습 위주인 교과서 외 실제의 삶과 감정을 다루는 교재역할을 할 정제된 어린이책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27일 서울 마포구 씽투창작소에서 만난 남윤정 대표가 뜨개질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의 한 장면을 펼쳐보이고 있다. 박소영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27일 서울 마포구 씽투창작소에서 만난 남윤정 대표가 뜨개질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의 한 장면을 펼쳐보이고 있다. 박소영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교사와 교수, 평론가 등 6명의 전문위원으로 구성된 나다움어린이책 선정 위원회는 10세 이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1,200여종의 국내외 아동 도서를 심사했다. 이들은 ‘남자다움, 여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이라는 키워드를 찾고 주제영역에 따라 10개의 범주를 나누고는 ‘인물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기 발견과 성장을 추구하는가’ 등 이야기의 서사와 등장인물에 대한 26개의 질문에 맞춰 평가했다. 남 대표는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한 가치는 자기를 긍정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며 서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책을 선정할 때 기본으로 고려한 것은 ‘등장인물이 남녀동수인가’다. 남 대표는 “서양의 어린이책 편집에서는 등장인물의 남녀동수가 편집의 기본”이라며 “여기에 인종과 직업의 다양성을 의식적으로 부여한다. 아이들이 무의식적으로 그림을 봤을 때 평등한 상황임을 인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모험의 주인공이 여성인가 여부, 예민하고 섬세한 남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경우 등 기존의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얼마나 벗어날 수 있는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었다.

남 대표는 “올해까지 책을 선정하고 도서관에 보급하는 일을 했다면 내년부터는 어린이 도서관, 공공도서관 중심으로 나다움어린이책을 전시하고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활동할 수 있도록 소통 작업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우리는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가장 일차원적이자 근원적인 텍스트인 어린이 책으로 시작했다면, 앞으로 더 다양한 영역에서 비슷한 작업이 이뤄졌을 때 사회의 큰 변화도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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