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산행 도중 사고로 세상을 뜬 한국 불교 대표 선승인 적명스님의 영결식이 28일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봉행됐다. 봉암사는 스님이 수좌(首座)로 지냈던 곳이다. 1년에 딱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산문을 열어 일반인 출입을 허락하는 봉암사에는 이날 사부대중(출가한 비구ㆍ비구니, 재가신도인 우바새ㆍ우바이 등 불교 교단을 구성하는 네 부류 사람들) 3,000여명이 찾아와 고인의 법구(法軀)를 배웅했다.
영결식에 참석한 선승들은 봉암사 최고 지도자인 ‘조실’ 자리마저 거부하고 ‘수좌’라는 평범한 직책을 지킨 채 수행에만 전념했던 스님의 떠남을 아쉬워했다. 장의위원장을 맡은 조계종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스님은 영결사에서 “아직 간화선(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이 한국과 세계화로 정착되지 못해 더 많은 지도와 가르침이 필요한 때 대종사께서 우리 곁을 떠나시다니 너무 안타깝고 한스럽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다시 향 사르고 청하오니 본래 서원 잊지 마시고 노니시다가, 다시 사바에 오셔서 대사를 거듭 밝혀 주시고, 중생을 깨우쳐 달라”라며 영결사를 마무리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도 추도사를 통해 “한국 불교의 큰 스승 한 분을 적멸의 세계로 떠나보낸다”며 “생사와 별리의 경계를 마땅히 넘어서야 하지만 이렇게 큰 스승을 보내야 하는 마음은 허허롭기 그지없다”고 추모했다.
이 자리에는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세민 대종사,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의정스님, 이철우 경북도지사, 주호영 국회 정각회 명예회장, 김거성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윤성이 동국대 총장 등도 참석해 적명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영결식 이후 다비식도 이어졌다. 사찰 인근 봉암사 연화대에서 치러진 다비식은 죽은 이의 시신을 불태워 유골을 거두는 의식이다. 만장을 앞세운 장례 행렬은 스님의 법구를 인근 연화대로 옮겼다. 약 2m 높이로 나무와 숯 등을 이용해 만들어진 화장장에는 법구가 안치된 뒤 불이 붙었고, 나무가 타들어 가면서 스님의 육신도 화염 속으로 사라졌다.
1939년 제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고교 졸업 후 출가해 1966년 해인사 자운스님으로부터 구족계(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았다. 1967년 당시 성철스님이 방장에 추대돼 선풍이 일기 시작하자 가행정진에 들어간 이래 평생 선방을 떠나지 않았다. 24일 스님은 사찰 뒤편 희양산에 올랐다 동료 수행자들을 먼저 보내고 혼자 산행을 이어갔다. 점심시간이 넘어서도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승려들이 찾아 나섰고, 스님은 산중 바위 아래서 쓰러진 채 발견됐으나 숨은 이미 멎은 상태였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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