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일자리, 지역에서 앞장섭니다] <4> 서울 서대문구 신촌박스퀘어
김미영(27) 씨는 대학생 때 늘 허기졌다. 자취생활에 차디찬 편의점 도시락 등으로 끼니를 때운 날이 많아서였다. 싱싱한 야채로 장을 봐 밥을 지어 먹는 일은 시간도 주머니 사정도 허락하지 않았다.
‘채소가 듬뿍 든 건강한 한식을 1인용으로 간편하게 먹을 수는 없을까.’ 생활의 불편은 창업 아이디어가 됐다. 경영학을 전공하던 김씨는 외식조리학을 복수전공으로 택해 한식 가게 창업의 꿈을 키웠다. 시장성 있는 메뉴 개발과 점포 확보가 큰 숙제였다. 김씨는 지난해 상반기 서울 서대문구가 낸 청년(만 19~39세)식당 입주자 모집 공고를 보고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았다. 장소는 경의중앙선 신촌역 인근 신촌박스퀘어. 6.6㎡(2평)의 작은 공간이지만 역세권에 보증금 없이 월 8만원의 임대료로 최대 3년 동안 가게를 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김씨는 약 1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가게 이름을 ‘야채를 담다’는 뜻의 ‘야담’으로 짓고, 대표 메뉴로 불고기와 토마토, 양상추 등 야채가 가득 담긴 퓨전 한식 ‘불고기 와플밥’을 내놨다. 영업을 시작하자마자 주변 대학가 자취생들이 몰렸다. 김씨는 올 3~6월엔 평균 월 매출 1,000만 원을 올렸다. 김씨는 “지난해 대학 졸업한 뒤 길을 찾지 못해 정말 막막했고 구석에 몰린 느낌이었다”며 “이곳에서 나를 찾았다”고 말했다.
김씨가 꿈을 키운 신촌박스퀘어는 컨테이너형 공공임대 상가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서대문구가 공공화장실이 들어선 공간을 지상 3층 규모(연면적 약 774㎡)의 활력 넘치는 일터로 지난해 9월 탈바꿈시켰다. 청년 창업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침체된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2~3층엔 청년 창업가들이 주로 둥지를 틀었지만, 1층엔 이화여대 근처에서 영업하던 노점상들도 들어왔다.
국세청이 2017년 발표한 ‘국세통계로 보는 청년 창업 활동’에 따르면 청년들은 통신판매업에 이어 외식업을 두 번째로 많이 창업했다. ‘제2의 백종원’을 꿈꾸는 많은 청년에게 신촌박스퀘어는 요람이다. 공간 임대를 넘어 ‘청년키움식당’ 사업으로 외식 창업을 위한 매장운영과 컨설팅뿐 아니라 실전 운영 기회를 제공해 창업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어서다. 지난 4월 청년키움식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고다현(23)씨는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아 채식 식당 운영을 준비했다”면서 “이 사업에 참여해 한 달 간 교육 받으면서 메뉴 개발을 구체화하고 단체 주문 조리 기술 및 위생 등에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 씨는 지인들과 꾸린 ‘베지베어팀’으로 최근 열린 ‘2019 청년키움식당 우수 사례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난 18일 찾은 신촌박스퀘엔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영국 런던 명소인 ‘박스파크’를 연상케 하는 세련된 외형에 와인바와 카페 등이 들어서 청년들이 즐겨 찾는 장소로 떠오른 분위기였다. 특히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인근 이화여대를 방문한 뒤 독특한 곳에서 한국 음식을 먹으며 현지 문화를 즐기려는 이들이었다. 중국인 리우 웬(21)씨는 “컨테이너로 꾸린 상가는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없어 신기했다”며 “불고기 와플밥이 참 맛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공공화장실이 들어선 기피 공간이 도시재생사업으로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 외국인까지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은 “청년들이 경험을 잘 쌓아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공적인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지원할 것”이라며 “청년창업 활성화가 신촌박스퀘어와 지역 상권 활성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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