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랑의열매 공동기획 ‘나눔이 세상을 바꾼다’]
<5> 사이버성폭력 피해자 지원 강화
# ‘네가 날 버렸으니 너도 고통스러워야 해.’ A씨가 이별을 고하자, 전 남자친구 B씨는 휴대폰에 담긴 성관계 영상을 지인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헤어짐에 대한 복수를 한다며 불법촬영영상물을 유포하는 일명 ‘리벤지 포르노’ 범죄다. B씨가 영상을 퍼뜨렸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A씨는 매일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의 문을 두드리는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의 10명 중 1명 이상이 A씨와 같은 경우다. 영상물 유포가 확실하지 않지만, 유포 가능성이 높아 피해자가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두려움에 시달리는 상황. 한사성이 ‘불안피해’라 이름 붙인 폭력이다. 불안피해의 문제는 가해자가 영상물을 유포하기 전이거나 유포된 증거를 찾을 수 없어 경찰은 물론 여성가족부 등 피해지원기구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사성은 올해부터 불안피해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성폭력피해 지원단체 중 처음이다. 김여진 피해지원국장은 “사이버성폭력의 특성상 한번 피해영상이 유포되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기 때문에 협박을 받는 피해자의 두려움은 엄청나다”며 “피해영상물의 유포 여부를 최소 1주일간 모니터링하고, 피해자에게도 모니터링 방법 등을 교육한다”고 설명했다. 막막한 상황일지라도 피해자에 대응책을 알려주면 일상생활을 회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2017년 미투운동과 함께 출범한 사이버성폭력 피해 전담 시민단체 한사성은 올해 지속가능한 활동 기반을 세웠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함께 ‘사이버성폭력 피해지원 역량 강화’ 사업을 시작하면서다. 한사성이 지난 3년간 쌓아온 사이버성폭력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통해 피해지원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불안피해 같은 사각지대 지원도 한사성의 경험에서 발전된 아이디어다.
‘지속가능한 한사성’을 위한 중요 변화 중 하나는 ‘사이버성폭력 법률자문단’이 생겼다는 점이다. 그간 활동가들은 피해자 법률지원이 필요할 때 소수의 공익변호사에게 일일이 연락해 도움을 요청했다. 이들에게 자문료를 지급하려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아 무보수 봉사를 부탁하는 경우도 많았다. 올해 사업을 통해 정식으로 26명의 자문단(변호사 24명, 학자 2명)을 모집하면서 안정적인 법률지원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김 국장은 “자문단이 피해자 법률 지원 시 최소 ‘유선자문-고소장검토-사건수임’ 3단계 지원을 하도록 체계화했다”며 “앞으로 관련 법률 개선 연구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5명의 활동가들이 꾸준한 트라우마 상담을 받게 된 것도 큰 변화다. 피해자를 상담하고 직접 피해영상물을 모니터링해야 하는 이들은 그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2017년도 심리검사 결과 활동가 전원의 외상후 스트레스 정도가 최고치에 달했다고 한다. 올해부터는 한국트라우마연구교육원과 함께 한 명당 40회 정도의 꾸준한 심리상담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다. 활동가가 건강해야 피해자를 잘 도울 수 있다는 취지다.
한사성의 새해 소망은 사이버성폭력 피해 지원에서 나아가 피해자들의 ‘회복’을 돕는 것이다. 김 국장은 “피해자가 자신에게 발생한 폭력을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게 회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는 자조모임을 구성해 연대를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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