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부문] ‘3월 1일의 밤’ 저자 권보드래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한번 끝낸 주제는 잘 연구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면서도 "3ㆍ1운동은 아직 미련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권보드래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 도서관에서 3ㆍ1운동 신문조서를 우연히 접했다. 이전까지 권 교수에게 3ㆍ1운동은 “식상한 대상, 알려질 대로 알려진 대상”이었다. 호기심에 신문조서를 읽으며 충격을 받았다. 짧은 지식과는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권 교수는 10년 넘게 3ㆍ1운동과 사랑에 빠졌고, ‘3월 1일의 밤’이라는 결과물을 내기에 이르렀다.

‘3월 1일의 밤’은 우리가 잘 몰랐던 시대의 공기를 포착해낸다.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3ㆍ1운동을 담았다. 숭고라는 수식어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시대의 민낯을 그려내고, 3ㆍ1운동을 세계사의 맥락에서 되짚는다. 사건과 사건 사이 빈 역사를 상상으로 채워 3ㆍ1운동을 새롭게 바라보기도 한다.

지난 19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권 교수는 “연구 당시도 부담됐고 지금도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근현대 문학을 전공한 국문학자로서 한국 근현대사의 높은 봉우리를 올라 보려 했기 때문이다. 권 교수는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역사학자들이 교정해주고 비판해주면 좋겠다”며 “문학과 일상을 끌어들여 역사의 빈틈을 메우려 했던 점이 문학 전공자로서의 장점일 것”이라고 자평했다.

권 교수가 신문조서를 읽으면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건 식민지 조선인들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이유다. 어떤 이들은 독립을 했다는 말로 알아듣고 만세 운동에 동참했고, 또 어떤 이들은 함께하지 않으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식의 협박에 못 이겨서 거리로 나섰다(물론 시간이 흐르며 거리에 나온 사람들의 의식은 명확해졌다). 3ㆍ1운동은 인구의 3.7~6.2%가 참여한 전국적 사건이었다. 4ㆍ19 혁명과 6ㆍ10 민주화 운동을 뛰어넘는 참여도였다. 미디어와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 오보와 오해 등이 없었으면 일면 불가능했을 만도 하다. 그렇다고 권 교수가 3ㆍ1운동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는 것은 아니다. 권 교수는 “장기적으로 폭력 대신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비폭력에만 사로잡히지 않았던 사람들의 여러 복합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권 교수는 3ㆍ1운동을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제일 큰 사건”이라고 본다. “프랑스 사람들이 프랑스혁명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이 갈 길을 도모하는 것처럼, 3ㆍ1운동도 우리의 큰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분열되고 꽉 막힌 듯한 한국 사회에서 출구를 발견하는 데 3ㆍ1운동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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