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ㆍ롯데ㆍ현대ㆍ두산 ‘경영권 분쟁’ 휘말려
LGㆍGS, 다툼 없이 경영권 승계 이뤄진 곳들도
한진그룹에 ‘남매의 난’이 현실화 하는 걸까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동생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23일 법률대리인을 통해 조 회장이 아버지 고 조양호 회장의 유훈과 다르게 한진그룹을 운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요. 특히 조 전 부사장은 경영 복귀에 대한 합의가 없었음에도 남동생 조 회장이 사실과 다르게 외부에 알린 것을 지적해, 남매 간 경영권 분쟁을 예고했습니다.
반면 조 회장 측은 “선대 회장의 작고 이후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 국민, 고객 신뢰를 회복하고, 기업가치를 높여 주주와 시장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이것이 곧 조양호 회장의 간절한 소망이자 유훈이라고 믿는다”고 밝혔죠.
사실 이런 상속 분쟁이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 상속 과정에서 분쟁을 겪는 재벌가를 숱하게 봐왔기 때문인데요. 오죽하면 ‘돈이 피보다 중하다’는 얘기까지 있겠어요. 재벌가 분쟁의 역사를 되돌아 보실까요.
한진가의 분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죠?
그렇습니다. 시작은 선대회장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이 2002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룹 주도권을 잡기 위한 내부 다툼이 치열했어요. 장남인 조양호 회장과 조남호(차남), 조수호(삼남), 조정호(사남) 등 4형제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거죠.
창업자의 유언장에 따라 조양호 회장(대한항공), 조남호 회장(한진중공업), 조수호 회장(한진해운), 조정호 회장(한진투자증권, 현 메리츠종합금융증권)이 회사들을 나눠 맡았는데요. 조남호 회장과 조정호 회장이 “선친이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는데 유언장이 조작됐다”며 조양호 회장을 상대로 법적 다툼을 벌인 겁니다. 법원이 조양호 회장의 손을 들어주면서 조양호 회장의 승리로 일단락 됐습니다.
롯데家의 분쟁은 한국과 일본을 넘나들었잖아요?
2015년 아버지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갑작스럽게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롯데의 모든 직위에서 해임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경영권이 동생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게 넘어가게 된 거죠. 신 전 부회장은 누나인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과 함께 아버지를 설득해 경영권 탈환을 시도합니다. 신 전 부회장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신 명예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회를 열어 신 회장을 비롯한 이사 6명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그 자리에서 해임했습니다. 일명 ‘손가락 해임’입니다.
신 회장이 가만히 있지 않았겠죠? 신 회장은 해임을 무효화하고 오히려 아버지를 대표이사에서 해임했습니다. 형인 신 전 부회장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이사직에서 해임한 호텔롯데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신 회장의 자리를 노렸습니다. 무려 6차례의 표 대결. 모두 신 회장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현대그룹은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그럴 거에요. 거의 20년 전 일이니까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타계하기 1년 전인 2000년인데요. 둘째 아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다섯째 아들 고(故) 정몽헌 현대그룹 전 회장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충돌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은 정몽구·정몽헌 두 사람이 공동회장 체제로 운영했었어요.
다툼이 시작된 건 정몽구 회장이 2000년 3월 정몽헌 회장의 최측근 심복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 회장으로 전보시키는 인사를 단행하면서였어요. 정몽헌 회장이 인사보류를 지시했고, 현대그룹 구조조정위원회가 정몽구 당시 공동회장의 면직을 발표합니다. 이후 공개된 정주영 명예회장의 육성은 정몽헌 회장의 손을 들어줍니다. 결국 정몽헌 회장이 그룹 본체인 현대그룹을 갖고,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그룹을 물려받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 정몽헌 회장은 일찍 생을 마감했고요. 정몽구 회장이 물려받은 현대차그룹은 덩치를 키워간 반면, 현대그룹은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형제의 난’으로 대표가 해임된 기업도 있다고요?
네. 바로 두산그룹입니다. 2005년 박두병 초대회장의 차남 박용오 전 회장은 다른 형제들과 경영권 승계를 놓고 갈등을 벌였습니다. 장남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에게 이양하라고 하고, 두산그룹이 박용성 회장을 차기 회장에 추대하자 박용오 전 회장은 크게 반발했습니다.
박용오 전 회장은 급기야 동생인 박용성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 비자금을 조성했다고 검찰에 진정서를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건으로 박용오 전 회장은 그룹에서 퇴출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두산은 286억원을 횡령해 비자금을 조성하고 2,8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이 드러났죠.
경영권 분쟁이 없는 재벌이 오히려 뉴스겠군요.
맞습니다. LG그룹은 경영권 분쟁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사회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LG그룹은 경영권 갈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장자가 그룹 회장을 잇고, 다른 가족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계열 분리로 독립하는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요.
1대 회장인 구인회 창업회장이 1969년 12월 별세한 뒤 구 회장의 6남 4녀 중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이 45세였던 1970년 회사를 물려받았죠.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21세기를 맞는 세대교체’를 선언하며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넘겨줬고요. 지금은 구본무 회장이 불의의 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뒤 양자로 들인 구광모 현 회장이 LG그룹을 이끌고 있습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3대에 걸쳐 구씨 일가와 끈끈한 동업관계를 이어오던 허씨 일가는 2004년 GS그룹으로 계열 분리가 됐는데요. 동업 관계도 이례적이었지만, 무탈하게 계열 분리가 이뤄진 것도 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진그룹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LG그룹과 GS그룹처럼 경영권 분쟁 없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때처럼 갈등을 반복하게 될까요?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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