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에서 최대의 고민은 역시 짜장이냐 짬뽕이냐다. 왕년에는 그 후보로 우동도 있었다. 중국집에서는 당연히(!) 면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볶음밥은 거의 대상에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넷이니 사지선다다. 요즘엔 우동이 메뉴에 거의 안 보이고 짬짜면이 등장했다. 여전히 사지선다다. 중국집 앞에서 타로점이나 수정구슬점을 치고 들어가야 메뉴 선택에 어려움이 없으리라. 하여튼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는데(결국), 옆자리의 젊은 친구가 곱빼기를 외친다. 하, 듣기 좋은 말이다. 서양에서 좀 살아봤는데 곱빼기란 말은 별로 없다. 예를 들면 여러분들도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주문한다 치자. 곱빼기 주문 시 이런 대화를 해야 한다.
(손님)“일인분 스파게티 무게가 얼마죠?”
(직원)“110그램입니다.”
(손님)“그럼 150그램 주세요.”
직원은 ‘110: 150=8유로: X’라는 식을 세워서 계산을 해야 한다. 안 그래도 수학에 약한 이탈리아 식당의 직원은 계산을 하다가 화가 난다. 그러다가 스파게티가 늦게 나오고 퉁퉁 불어버릴지도 모른다. 한국은 곱빼기 가격이 정해져 있다. 500원 추가다. 그냥 이렇게 외치면 된다. 짜장 곱빼기요! 볶음밥 곱빼기요!(볶음밥도 곱빼기가 당연히 가능하다). 더 훌륭한 건 그냥 우리 밥집이다. 이모 밥 많이요, 하면 된다. 더러 “네가 퍼다 먹어 썩을눔아” 하던 욕쟁이 할머니집도 있었다. 아아, 셀프로 마음껏 밥을 더 퍼먹을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욕을 먹고 싶어 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었겠지만. 아참, 혹시라도 오해할까 말씀드리는데, 서양에서는 보통 밥에 해당하는 건 빵이다. 빵은 리필이 당연히 무료다. 스파게티는 탄수화물이긴 하지만 요리에 해당하므로 앞에 쓴 것처럼 무게를 지정하여 주문하고 돈을 더 받는다는 건 사실이다.
광주 조선대 앞에는 학생용 밥집이 여럿 있었다. 한 삼십 년 전의 기억이다. 서울 밥값의 삼분지 이나 될 싼값에 반찬이 하나같이 입에 맞았다. 그쪽 말로 ‘개미진’ 찬에 밥이 꿀떡이었다. 심지어 양념한 젓갈도 상에 올랐다. 늘 그렇지만, 먹자고 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묘한 서글픔을 준다. 누구나 먹어야 산다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원초적 뒷모습을 보는 감정이다. 그날은 좀 달랐던 것 같다. 조선대생들은 이런 맛있고 푸짐한 밥을 먹고 사는구나, 뭐 이런 부러움 같은 감정이 뭉클거렸던 기억이 난다. 다른 것보다 밥이 고봉이었다. 그때는 그런 걸 농군밥이라고 했는데, ‘농군밥을 먹는다’고 부를 때 우리들의 마음에는 절반쯤은 경외감 같은 게 있었다. 그런 밥을 먹는 친구가 성실하고 우직해야 부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쌀을 만드는 이나 먹을 수 있는 넉넉한 밥의 권리라고나 해야 할. 그 후에는 고봉밥을 ‘노가다 밥’이라고 흔히 부르게 되었다. 노가다는 본디 건설, 토목 노동(자)을 낮춰 부르는 속어였을 텐데, 언젠가부터 비자발적이고 무의미한 노동을 일컫는 보편적인 입말이 되었다. 이제 고봉밥을 먹는 이들이 갖는 노동자로서 자부심 같은 건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컵라면 한 개를 남기고 사라진 구의역의 비정규직 노동자 친구를 떠올려보면, 이제 노동밥이란 컵라면이 되었다. 고작 컵라면이라니.
한 조사를 보니, 1950년대에 비해 당대의 밥 양은 대략 60~70퍼센트 줄어들었다고 한다. 주로 밀가루로 만든 간식을 많이 먹고 육체 노동량이 적어서 그럴 것이다. 게다가 탄수화물을 멀리 하려는 다이어트 시대이기도 하다. 뼈만 빼고 싹 빼드린다는 헬스클럽 광고가 흔한 세상이다.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자그마한 그릇에 담긴 밥을 입에 넣다 보니, 옛날 조선대 앞의 고봉밥, 농군밥, 노가다밥이 생각났다. 저탄고지(저탄수화물 고지방식) 하시는 분들에게는 송구스럽다. 밥이 그래도 밥다워야지.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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