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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심사평] 주민ㆍ도서관ㆍ출판 협업 독특한 모델 제시

입력
2019.12.27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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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회 편집 부문 수상작 ‘요리는 감이여’

요리는 감이여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창비교육 발행ㆍ232쪽ㆍ1만7,000원

책은 소수미디어, 소리 없는 존재들에게 입술을 내어주는 일에 최적화되어 있다. 목소리 큰 자들의 아우성을 들려주는 표면의 미디어와 달리, 출판은 사회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속 깊은 신호에 주목하는 심층의 미디어다. 침묵을 강요받는 이들이 내는 미약한 신호들을 증폭하고, 언어 없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번안해 크게 퍼뜨린다. 이런 뜻에서 출판은 시장 너머의 실천, 자본의 질서를 넘어서는 한 걸음이다. 편집자는 이 일에 소명을 느껴야 하고, 적합한 콘텐츠를 책으로 단단히 구현할 수 있도록 고도로 훈련되어야 한다.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위안물들, 키치 미학에 중독된 예쁜이들, 문구에 거의 가까운 캐릭터물들이 넘치는 출판 현실에서, 심사의 목소리는 시대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담아내는 실천을 통해 책의 또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는 책들에 집중되었다.

‘크리스 조던’은 인류세 시대에 인간과 자연의 상호성에 대한 성찰이 돋보였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먹고 죽은 바닷새 사진은, 인간의 일상이 지구 전체에 어떠한 무참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선명히 깨닫게 한다. 저자와 연대를 바탕으로 해외에 없는 책을 만든 출판사 역할이 주목을 받았으나 편집적 전문성이 다소 아쉬웠다.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와 ‘요리는 감이여’는 우리말이 아직 충분히 가 닿지 못했던 경험을 생생히 전한다. 전자는 화상 경험자들의 고통과 치유의 서사를 인터뷰 형태로, 후자는 도서관 등에서 교육을 받고 비로소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된 51명의 충청도 할매들 인생 요리를 책으로 엮어냈다. 초 연결사회는 인간 전체를 미디어로 만든다. 누구나 자기 삶을 스스로 기록하고, 책으로 만들어 아카이브 하는 시대다. 미래의 지역 도서관에는 주민들의 독특한 삶을 담은 자기 기록이 중심이 될 것인데, 요리는 중요한 한 축을 이룰 것이다. 이러한 책들이 이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요리는 감이여’는 도서관-자기기록-독립출판-편집-상업출판-도서관으로 순환하는, 흥미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장은수 이감문해력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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