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화 ‘캣츠’ 홍보를 위해 지난 23일 한국을 찾았던 톰 후퍼 감독이 하루 만인 24일 한국을 떠났다. 시사회, 기자회견,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 등 빡빡한 일정만 소화해내고 떠난 것이다. 기껏 멀리 와서, 왜 그리 급히 떠났을까.
25일 영화계 관계자들이 전한 말에 따르면 후퍼 감독의 선택은 단순한 ‘해외 영화 홍보 행보’ 차원이 아니었다. 후퍼 감독은 영화 개봉 전 반드시 방문할 나라로 모국인 영국 이외에는 단 한 곳, 한국만 꼽았다고 한다.
계기는 전작 영화 ‘레미제라블’이었다. ‘레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로는 한국에서 592만 관객을 동원한 성공작이었다. ‘레미제라블’ 흥행 덕에 공군이 제설작업의 고충을 나타낸 패러디 영상 ‘레밀리터리블’을 만들고 이 영상이 해외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레미제라블’의 한국 개봉일은 2012년 12월 19일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된 18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공교롭게도 박 전 대통령 하야와 탄핵을 요구한 2016년 겨울 서울 광화문 촛불시위 때 시위대는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민중의 노래’를 불렀다. ‘레미제라블’이 박근혜 정부의 탄생과 몰락의 순간과 함께 했던 셈이다.
후퍼 감독도 이 우연을 굉장히 놀라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촛불집회 당시 영상, ‘민중의 노래’ 공연 영상, 박 전 대통령 탄핵 관련 뉴스까지 일일이 다 찾아봤다 한다. ‘캣츠’ 개봉 전 반드시 찾아야 할 나라로 한국을 딱 꼬집어 지목하면서 후퍼 감독은 “촛불집회가 바로 12월 이맘때였으니 꼭 한국을 가겠다”고 강조했다 한다.
한국을 찾은 후퍼 감독은 영화 배급사, 홍보사 관계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북미 관계 등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이 한국에서 환영받은 이유를 한국만의 정치ㆍ사회적 맥락과 연결 지으려 귀를 쫑긋했다는 후문이다.
한편, ‘레미제라블’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기대감에 힘입어 ‘캣츠’는 24일 기준 18만6,800여명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2위로 출발했다. 하지만 후퍼 감독의 한국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호감에도 불구하고 ‘캣츠’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평은 그리 호의적이지 못하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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