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교민 사업가 집에 침입 가족들에 흉기 휘둘러 아내 숨져
“금고 열라” 현지인 발음 영어 써… 교민사회 “상상도 못 할 일” 술렁
베트남 호찌민시 한국 교민 주택 강도사건을 수사 중인 현지 공안이 범인을 한국인으로 특정했다. 공개수사 전환 이후 잇따른 제보들을 분석한 결과다. 공안은 용의자의 출국을 금지하고 신병 확보에 주력하고 있지만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호찌민총영사관 관계자는 25일 “용의자의 사진을 공개한 뒤 제보가 답지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정보들을 파악해 공안 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공안은 현재 해당 용의자의 출국을 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공안이 수사력을 집중해 신병 확보에 나섰지만 아직까지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호찌민총영사관은 현지 공안으로부터 유력 용의자의 사진을 제공받은 뒤 경찰영사가 중심이 돼 교민 사회에서 제보를 취합ㆍ분석하는 한편 교민 사회에 불안감이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용의자가 한국인으로 특정되자 이번 범행이 치밀한 계획 아래 이뤄진 것이란 얘기도 나오고 있다. 생존 피해자 A(50)씨와 면담한 공안당국의 한 관계자는 “강도가 ‘금고 문 열어’ 등의 짧은 말을 영어로 했는데 베트남인의 발음 같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용의자는 저항하는 A씨와 치열한 몸싸움을 하는 동안에도 한국말을 사용하지 않고 베트남식 발음의 영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사전에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베트남인처럼 보이려고 연습을 많이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실제 공안은 범행 당시 용의자의 영어 발음을 근거로 수사 초기에는 베트남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범인은 또 스마트폰 등 금품을 챙기고 피해자의 승용차를 몰고 달아난 뒤 8㎞ 가량 떨어진 호찌민 2군 지역 투티엠다리 옆 공터에서 승용차를 불태우는 치밀함을 보였다. 이 곳은 신도시 개발 예정지로 폐쇄회로(CC) TV가 없는 곳이다.
베트남 정부도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레 티 투 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일보의 문의에 “주호찌민 한국총영사관과 긴밀히 협조해 사건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민들 사이에선 불안감이 커지는 모습이다. 베트남전쟁 때부터 호찌민시에 거주하고 있는 한 원로 교민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런 불미스러운 일은 한번도 없었다”면서 “교민사회의 규모가 커지면서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앞서 지난 21일 오전 1시 30분쯤 호찌민시 7군 한인 밀집 지역인 푸미흥에서 사업가인 교민 A씨의 집에 강도가 침입해 A씨와 아내(49), 딸(17)을 흉기로 찔렀다. A씨와 딸은 응급수술을 받은 뒤 회복 중이지만 A씨의 아내는 숨을 거뒀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