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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그림자가 될 줄 알아야 해, 그래야 공연이 오르지”

입력
2020.01.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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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부문 당선자 이홍도씨 당선소감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 이홍도씨. 본인 제공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 이홍도씨. 본인 제공

극 ‘파운틴헤드’ 때의 일입니다. 담당하는 기획자분께서 공연자막을 번역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여쭤봤습니다. 원래 자막번역도 하셨냐고. 프로그램에선 이름을 못 봤는데. 그랬더니 하신 말이 이거였습니다. 홍도, 그림자가 될 줄 알아야 돼. 그래야 공연이 올라가지.

당선소감을 쓰는 지금,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무대, 조명, 음향, 영상, 의상, 소품, 분장, 배우, 연출, 안무, 극장운영, 기획, 홍보, 마케팅, 비평, 매체, 제작, 업체, 재단, 기관. 그런데 그 많은 이들 가운데 저 혼자만 이렇게 말할 기회를 가져도 되는 걸까요? 공연이란 것이 얼마나 올라가기 어려운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책임과 헌신을 요구하는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어떤 글도 함부로 써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이 지면을 빌어, 다시 인사 드립니다. 오랜만에 현장으로 나간단 느낌이 있습니다. 올해 1년 동안 주로 대본작업을 하면서 소속 없이 지냈던 터라 괜히 새삼스럽습니다. 그 전까지 일을 하면서 느꼈던 감사함과 죄송스러움을 혼자 있는 내내 곱씹어왔습니다. 맞아. 그땐 그랬지. 공연이 뭐라고. 공연이 뭐길래. 앞으로 한번 더 잘 부탁 드립니다. 다들 극장에서 또 만나요.

2016년 4월, 한 줄의 제목 떠올랐습니다. 거기서 작업은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3년 8개월 동안 계속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바뀌어갔습니다. 무척 부족한 작업들이었고 결국은 다 지워 없앴습니다.

이번에 신춘문예에 응모했던 작품도 마감을 앞두고 형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맞는 선택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또 버려질 대본을 쓰고 있는 건 아닌지. 내내 두렵고 긴장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제목만은 단어 하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처음 순간 떠올랐던 한 줄 그대로입니다. 이제 그 제목이 무엇인지 이 당선소감을 읽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쓰면서도 스스로 많은 한계를 느꼈습니다. 다시 펼쳐봐도 허점이 가득한 대본입니다. 작품이 거칠고 제멋대로다 보니 심사위원분들도 고심하셨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겠습니다. 어서 빨리 이후 작업으로 새 출발하겠습니다.

저는 연극학교도 나오지 못했고 대학극회 출신 또한 아닙니다. 극단에 소속된 적도 없습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연고 없는 저를 대가 없이 환대해주셨던 분들 덕입니다. 동작구 상도동, 미시시피주 옥스포드, 뉴욕주 플러싱, 중구 장충동, 강남구 역삼동, 서초구 잠원동, 성북구 동소문동, 종로구 동숭동. 그곳에서 들었던 한 마디 말의 온기가 제게는 내내 갚지 못할 빚이 되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홍도 희곡 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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