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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컬럼비아대 기숙사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동양인 임산부와 현장에서 도주한 동양인 남성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지나치게 짧은 보도기사’

입력
2020.01.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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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삽화. 박구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삽화. 박구원 기자

-나오는 이들

우낙원, 26세

T. D. 정, 34세

작가의 자기검열

‘나’, 29세 

1.

관객들이 입장하는 동안 간이의자에 앉아 대본을 고치는 ‘나’.

원고들은 구겨졌거나 빨간펜으로 죽죽 그어진 채 바닥을 뒹군다.

나: 2019년 11월 1일, 제가 신춘문예 응모작을 쓰기 시작한 날입니다. 지금부터 보실 연극의 대사들은 지난 일들에 대한 장면 회상, 떠오르는 생각들의 메모, 작품을 쓰면서 추가한 집필노트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인물도 하나 만들었는데요. 제 내면의 소리를 관객 여러분께 전달하는 역할입니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에요.

작가의 자기검열: (목소리만) 일기 써놓은 것도 아니고 그게 뭐야. 작품 아니고 일기 같잖아.

나: 지금처럼 말이죠. 방금 전의 인물은 연극배우 H입니다. 재현을 위해서 일시적으로요.

작가의 자기검열: (목소리만) 그냥 니 얘기 그대로 적어놓은 거 같아. 나는 게이다, 호모다.

나: 연극배우 H는 소속되어 있던 극단이 2018년 미투로 해체된 후 지방공연으로 아동극, 음악극, 전통극 등을 하며 배우 생활을 이어갔는데요.

작가의 자기검열: (목소리만) 어쩌라고. 게이니까, 호모니까, 차별하지 말라, 인정해달라, 존중해달라, 이 얘기야?

나: (팔을 들고 벌 서며) 제 대본을 읽고 H가 했던 말에 전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술자리가 끝난 뒤에도 연극배우 H의 질문은 제 안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에 저는 대본을 고쳐 쓰려고 했는데, (‘나’에게) 팔 내려간다? 그게 되질 않았습니다. 이 대본을 고치고 있는 게 정작 제 자신이 아니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누가 제 대본을 고치고 있는 걸까요? 

2

우낙원: 이곳은 맨해튼 웨스턴 32번가 코리안 스트리트 32번지, 바로 뉴욕 한인타운 한가운데에 위치한 도시락 전문점 ‘우리집’입니다. 한인민박에 살면서 낮엔 식당일을 하고 밤엔 대본을 쓰던 어느 날, 전시를 하고 싶다며 제게 메일을 보낸 기획자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는데요. 감사해요, 이렇게까지.

T. D. 정: 아니에요, 작가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낙원: 쇼케이스는 어떻게 보셨어요?

T. D. 정: 놀랐죠.

우낙원: 다행이네요. 다른 장르랑 협업하는 거 예전부터 쭉 생각을 해왔거든요.

T. D. 정: 그러세요?

우낙원: 이번에는 협업이라기보단 전시 일환으로 독립해서 하면 어떨까 싶어요. 공간도 나눠서.

T. D. 정: 전시 하세요?

우낙원: 아뇨. 지금 기획하시고 계신 그 전시요. 혹시 이 작품도 참여할 수 있을까 해서….

T. D. 정: 아. (사이) 작가님, 제목만 보고 왔잖아요, 제가.

우낙원: 인연인 거 같아요.

T. D. 정: 그래서 그런데. 생각이랑 좀 다르더라고요. 실제 공연은.

우낙원: 그래요?

T. D. 정: 예, 좀.

우낙원: 그러셨구나.

T. D. 정: 좀 많이.

우낙원: 어떠셨길래요?

T. D. 정: 공연 잘 봤습니다, 작가님. 근데 기획을 하려면…. 제목만 차용하는 게 어떨까.

우낙원: 제목만이란 게?

T. D. 정: 집필하신 대본이랑은 내용적으로 무관하게 될 거고요. 조각, 영상, 설치작품 같은 것들로 전시가 구성되는데 인터뷰 하고 매체이론 연구도 하고요. 하지만 타이틀이 작가님 오늘 쇼케이스 하신 공연 제목인 거죠. 사전연구기록집, 포스터, 언론기사를 비롯해서 전부 이 제목으로 노출되는 거고요. 그러니까 전시에 굉장히 핵심적인 역할이죠. 그래서 뵈러 온 거고. 물론 제목 한 줄에 어떤 저작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우낙원: 저작권이요?

T. D. 정: 아무래도 한번 뵙는 게 더….

우낙원: (말 끊으며) 안 돼요. 제목만 가져가는 건.

T. D. 정: (사이) 어떤 것 때문에 그러세요?

우낙원: 아직 정식으로 공연을 한 것도 아니고. (주저하다가) 감사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제목만 쓰는 건. 

3

작가의 자기검열: 다음은 무대 디자이너 J 입니다.

나: 무대 디자이너 J는 제게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요즘은 뭐라는 사람 없지 않아? 커밍아웃하고 활동하는 게 예술 계통에 워낙 많으니까.

나: 이 일화를 들은 극작가 S는 자신의 경험을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제 작품은 관객과의 대화 때 그런 질문을 하는 분이 있더라고요. 주인공이 태국에 가서 성전환수술을 하려는데, 그 이유가 작품에 잘 안 드러나 있는 것 같다시면서.

나: MTF 트렌스젠더.

작가의 자기검열: 그게 알고 싶으셨대요. 가정환경이 어떠면 나중에 자라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나: 즉 남성에서 여성으로.

작가의 자기검열: 그런데 작품 다 보고 나서도,

나: 저는 관객의 반응에 극작가 S가.

작가의 자기검열: 왜 성전환을 하려는지 아직 모르겠고, 공감이 안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나: 어떤 기분을 느꼈을 지 생각했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그 말씀이, 저한텐 좀 그랬어요.  

4

T. D. 정: 잠깐, 그럼 전시 일환으로 공연도 같이 하고 싶으시단 거죠? 전시 타이틀로 제목만 주시는 건 어렵고요?

우낙원: 힘들까요?

T. D. 정: 아 이걸 어떻게 말해야 되나? 작품 내용이 실화에서 나온 거죠?

우낙원: 아시네요.

T. D. 정: 그 영화감독 얘기잖아요. 제작자랑 다투고 투신자살한. 영화가 4시간이 넘어 갔던가.

우낙원: 234분이에요.

T. D. 정: 예. 아무튼. 뭐라고 해야 될까. 제가 전시만 했지 공연 해본 것도 없어서. 이게 또 작품이 저랑 잘 맞느냐도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그런 기획자가 붙으면 작품에 좋죠. 더 많이 주제에 공감하고 또….

우낙원: (말 끊으며) 절망적이었겠죠.

T. D. 정: 심정은 이해 가는데.

우낙원: 자기 영화가 난도질 당한다는 게.

T. D. 정: 감정이입이 그렇게는 또.

우낙원: 전 중요한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보편적인 얘기기도 하고. 계속 있는 일이잖아요. 이야기에 가치판단을 하고, 지워버리려 하고.

T. D. 정: (사이) 잘 생각해야 하는 거 같아요. 아시죠? 어떤 게 작품에 더 나은 방향일지. 저도 아들이 있지만, 자기 자식 키우기가 더 힘든 것처럼. 그래서 제작자나 기획자가 필요한 거 아니겠어요. 객관적으로 봐야 하니까.

우낙원: 그 가치 판단을 남이 하는 게 옳은지 모르겠어요.

T. D. 정: 균형인 거죠. 또 작품을 위해서도. 

5

나: 신춘문예를 준비하면서 그때 그 대본을 다시 읽어봤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줄거리는 다음과 같은데요.

나: 도입 부분이라 아직 문제 될만한 내용이 안 나오긴 해요.

작가의 자기검열: (확성기를 통해) 미국 교환학생 가서 학과 수석을 한 주인공. 전공은 연극영화과. 뉴욕을 간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최종선발에서 떨어지는데. 주립대학 학생 중 선발해서 방학 때 맨해튼 보내는 이름하여 브로드웨이 워크샵. 이유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인공은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요.

나: 멤피스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때마침 터지는 캐리어. 옷걸이에 옷을 말아 쓰레기통에 버리니까 그게 꼭 내 몸통을 말아놓은 것 같았다. 밀려나 버려지는, 분리수거 되어 실려가는. 한국으로, 그렇게 한국으로.

작가의 자기검열: (확성기를 통해) 바로 그때 울리는 전화벨. 주인공은 전화를 받습니다.

나: 저는 전화를 받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확성기를 통해) 전화를 건 것은 리처드 포드, 1944년생. 미시시피대학교 영문과 문예창작 부전공 객원교수.

나: 1996년 퓰리처상 그리고 펜 포크너상 수상 소설가.

작가의 자기검열: (확성기를 통해) 낙심하고 있던 찰나, 학기 중에 제출했던 소설에 추천사를 써주겠다는 뜻밖의 연락을 받은 ‘나’.

나: ‘나’?

작가의 자기검열: (확성기를 통해) 주인공 ‘나’는 자신의 자전적 퀴어소설을 단행본으로 출간하기 위해 리처드 포드 교수의 추천서 한장만 들고 무작정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펼쳐지는 주인공의 뉴욕 맨해튼 정착기. 그러던 어느 날.

나: 저는 회신 온 메일에 적혀 있는 주소를 따라 출판사를 향해 걷고 있었는데요. 방향을 잃고 골목에 접어든 순간, 낯선 남자와 마주친 것은 바로 그때였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이봐, 동양에서 온 브라더. 재즈를 알아?

나: 저는 대답했습니다. 잘 모르는데요.

작가의 자기검열: 맞아. 바로 그거. 동양인 눈 찢어진 게 똑똑해서 그런가 봐. 나도 재즈가 뭔지 몰라. 재즈가 뭔지 아는 인간들은 이미 다 지구상에서 사라졌어. 이제 아무도 없어.

나: 아, 네.

작가의 자기검열: 난 아티스트야. 아티스트 만나본 적 있어, 브라더? 마일스 데이비스가 CD를 하나 줄게.

나: 필요 없는데.

작가의 자기검열: 내 이름이 마일스 데이비스야, 브라더. 네 이름은?

나: 죄송합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이름이 없나? 이름도 없어? 이름이 죄송이냐? 그래, 죄송아. 개 같은 놈의 죄송. 마일스 데이비스가 CD에 싸인을 했다. 누굴 위해? 자, CD받아. 너, 동양에서 온 죄송.

나: 말합니다. CD 필요 없어요.

작가의 자기검열: 뭐라고? 싹싹 빌길래 싸인까지 했는데.

나: 그런 적 없는데.

작가의 자기검열: 요, 맨. 이제 와서 필요 없다고?

나: 이렇게 말합니다. 아, 마일스 데이비스 아니잖아. 당신.

작가의 자기검열: 미쳤나, 브라더. 마일스 데이비스가 아니다?

나: 마일스 데이비스는 죽었잖아요.

작가의 자기검열: 그래, 네 놈이 죽을 것처럼 죽었지. (총을 겨누고) 키드, CD 값 해야지? 매고 있는 거 이리 내. 이거 외에 더 없어?

나: 예. 가진 전부예요. 거기 든 게.

작가의 자기검열: 주머니 다 까뒤집어봐. 이 사기꾼 젭스 새끼. 뒤로 돌아. 마지막으로 묻는다. 내 이름이 뭐라고?

나: (관객에게) 여러분, 누구라고요? (다 함께) 마일스 데이비스.

작가의 자기검열: 지랄하네.

나: (확성기 들고) 마일스 데이비스가 주인공 머리를 권총으로 후려치면 ‘나’ 쓰러진다. 이때 장면 전환에 맞춰 샘플링된 음악,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마일스톤스(Milestones)>.

작가의 자기검열이 객석에 난입하여 소란을 피우는 동안

‘나’는 소품으로 각종 효과음을 내 탈주극을 연출한다. 

6

T. D. 정: 자, 여기서 줄거리를 짚고 가죠. 연극은 다음과 같이 실제 기사 내용을 인용하며 시작되는데요.

우낙원: 지난 28일 컬럼비아대 오프 캠퍼스 하우징 베란다에서 30대 아시안계 임산부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은 세인트루크로 옮겨졌지만 오전 5시 24분 사망했다.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남성은 사망한 여성의 남자친구로 밝혀졌다. 남성 측 변호사에 의하면 사망한 여성은 남성과 대화를 하던 중 갑작스럽게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남성은 여성을 붙잡아 투신을 막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이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 경찰은 남성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있으며 사망한 여성에게 정신질환 등의 병력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제목, NY 컬럼비아대 기숙사서 30대 아시안 여성 추락사. 기사 입력, 2015년 9월 29일 16시 42분 뉴욕타임즈. 조명 큐!

T. D. 정: 왜 이래, 진짜.

우낙원: 다 알아야겠어.

T. D. 정: 아, 뭘!

우낙원: 권총을 들어올리며, 음악 큐. 묻는 말에 답해.

T. D. 정: 그거 안 들었지? 총알.

우낙원: 무대감독님, 음악 이거 말고요. (사이) 우리 애한테 부끄럽지도 않아?

T. D. 정: 들었구나.

우낙원: 이때, 한발의 총성. 탕, 하면 조명 돌아온다.

T. D. 정: 이런 내용이더라고요.

우낙원: 이게 왜요.

T. D. 정: 생각했던 거랑은 좀 달라서.

우낙원: 어떤 걸 기대하셨는데요.

T. D. 정: 아무래도 제목만 보면 그런 것들이죠. 미디어 매체가 양산하는 재생산물의 폭력성이랄까, 아니면 수많은 정보 속 흩어지는 사건들에 대한 예술의 역할 같은 거에 대해….

우낙원: (말 끊으며) 뭐가 문제세요.

T. D. 정: 모르겠어요. 이유가 다른데 있는 거 같기도 해서요. 임신 당시에 우울감을 이기지 못해서라든지.

우낙원: 이건 사회적 타살이에요. 개인의 문제로 갈 게 아니라.

T. D. 정: 예. 아니면 이런 의도는 아니었을까요? 좀 섬뜩한 거지만 본인 외에 아무도 편집을 못하게 극단적인 선택을….

우낙원: 그게 무슨!

T. D. 정: 예? 아니….

우낙원: (사이) 하기는 흔하죠, 이런 얘기. 뉴스는 쏟아지고. 사건, 사고는 넘치고. 창 밖으로 뛰어내리는 사람, 맨해튼에서 하루에 수십명 되겠죠. 

7

나: 강도를 당한 저는 먼저 역무소에 연락했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네, 역무실입니다.

나: 3번 출구에서 강도를 당했다고 하자 역무원은,

작가의 자기검열 CCTV 없는데요!

나: 라고 해서 저는 3번 출구에 CCTV 달렸다고 했고 그러자 역무원은,

작가의 자기검열: 껍데기!

나: 라며 경찰에 신고하랬습니다. 그래서 전활 하자 경찰은,

작가의 자기검열: 역무소!

나: 라기에 저는 다시,

작가의 자기검열: 지하철 내 역무소에 전화했는데요. 역무원은 CCTV가 없으며, 있다고 해도,

나: 경찰의 동행 없이 열람할 수는,

작가의 자기검열: 없어요!

나: 랬습니다. 경찰들은,

작가의 자기검열: 역무소 일!

나: 이랬고 역무소에선,

작가의 자기검열: 경찰 일!

나: 사건은 벌어졌고 그것은 나의 일이었을 뿐,

작가의 자기검열: 누구의 일도 아니었습니다.

나: 상황이 수습되질 않고 있자 저는 급한 대로 일단 출판사를 향했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저런, 어쩌다가.

나: 출판사 직원은 겁 먹은 표정이었는데요.

작가의 자기검열: 신고는 했어요?

나: 그보다 소설이,

작가의 자기검열: 자전적 퀴어소설,

나: 급하게 느껴졌습니다. 제 작품 읽은 건 어느 분이세요?

작가의 자기검열: 빨리 병원을 가보세요.

나: 의료보험이 없어서 못 갔단 말을 할 순 없었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찢어진 거 아니에요? 머리.

나: 말합니다. 짐을 다 잃어버렸거든요. 추천사도 같이.

작가의 자기검열: 스캔이나 사본은?

나: 없어요. 근데 읽어보신 분이 있냐고요.

작가의 자기검열: 투고되는 걸 다 읽어볼 순 없어요.

나: 안 읽고 절 부른 거세요?

작가의 자기검열: 일단 미팅을 잡은 거죠. 리처드 포드 선생님께서 추천사를 써주셨다니까.

나: 말합니다. 원래 그렇게 돼요?

작가의 자기검열: 정식투고가 아닌 직접추천으로 진행했던 거죠.

나: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야 NYPD로부터 연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최악이구만, 최악. 단서가 없어. 뒤져볼 게 없는데.

나: 마침내 제 사건에 전담수사관이 배정됩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보자. 노트북, 지갑, 여벌 옷 한벌, 책 한권, USB 2개, 여행용 세면도구…. 아주 이삿짐을 들고 다니셨구만. 이건 뭐야. 리처드 포드 자필서명 담긴 추천사 원고. 리처드 포드가 누구야? 그, 뭐야, 나우 앤 포레버?

나: 그건 리처드 막스인데요. 예, 추억의 가수. 관객분들은 좀 세대차이가 나실 텐데. 아무튼 퓰리처상 수상 작가와 가수 리처드 막스를 헷갈려 하는 수사관 앞에서 저는 애처럼 혼나게 됩니다.

작가의 자기검열: 이런 건 됐고. 이건 빼야 돼.

나: 뭐라고?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

작가의 자기검열: 어, 이것 봐라. 소릴 질러?

나: 말합니다. 그걸 왜 빼요.

작가의 자기검열: 조서에 물품가액이 들어가야지, 이거는 공란이잖아.

나: 그게 어떻게 가격이 있어요.

작가의 자기검열: 윗선에 보고할 때 어차피 못 올려. 가액 없으면.

나: 어떻게 그걸 누락해요. 백인들 사건도 이따위로 수사해요?

작가의 자기검열: 너 뭐라 했어?

나: 자꾸 이러면 이 장면 신춘문예 응모작에 넣을 거에요.

작가의 자기검열: 뭐? 신춘문예가 뭐야?

나: (소개 텍스트 건네며) 신춘문예 몰라요?

작가의 자기검열: (보고 읽는) 새로운 감수성과 문제의식으로 빛나는….

나: (확성기로) 신춘문예.

작가의 자기검열: (보고 읽는) 작가를 기다립니다. 당일 도착 우편물까지 유효. 당선작 발표 2020년….

나: (확성기로) 신춘문예.

작가의 자기검열: (보고 읽는) 1월 1일자 신문 지면. 응모작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표절로 확인될 경우….

나: (확성기로) 신춘문예.

작가의 자기검열: (보고 읽는) 당선을 취소합니다. (집어 던지는) 취소는 무슨, 뽑히겠어, 이게? 

8

T. D. 정: 코리안 스트리트에 위치한 도시락 전문점 ‘우리집’입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죠?

우낙원: 제목 얘기 말고 한 게 없는데요.

T. D. 정: 아 맞다. 아무튼 어떻단 건 아니고 일단 제목 자체가 워낙 힘이 있으니까. 어떤 메타포로서 말이에요. 뭔가 상징사건 같은 거죠.

우낙원: 작품 제목은 원래 라이선스가 없어요?

T. D. 정: 작가 허락 받을 수 있으면 좋죠.

우낙원: 그래도 작품 일분데.

T. D. 정: 일반적으론…. 자, 그러지 말고. 작가님, 머리 좀 식히세요. 혹시 담배 태우세요?

우낙원: 피고 오세요.

T. D. 정: 천천히 한번 같이 고민해보시죠. 글 안 써질 땐 뭐하세요?

우낙원: 글을 안 쓰죠.

T. D. 정: 정답이네. 여기서 일하신 지는?

우낙원: 두 달 정도.

T. D. 정: 할만하세요? 보통은 관련 있는 걸 하시잖아요. 미술 쪽에선 웹이나 포스터 디자인 같은.

우낙원: 글 쓰는데요, 뭐.

T. D. 정: 힘들게 쓰시겠네요.

우낙원: 쓰는 건 안 힘들어요. 못 쓰는 게 힘들지.

T. D. 정: 작가님, 한국에는 언제 가세요?

우낙원: 제가 왜 한국을 가죠?

T. D. 정: 맨해튼 한인타운에 위치한 도시락 전문점 ‘우리집’입니다.

우낙원: (객석을 향해) 잡담이 오가는 동안 생각합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올까 싶으면서도…. 고민이 됩니다. 단지 작가라는 이유로 이 선택을 할 권리가 제게 온전히 있는 걸까요? 이게 제 작품이라고 할 지라도. 그러다 슬쩍 휴대폰을 봅니다. 부재 중 통화가 와 있네요. 여자친구군요. 참, 진작에 물어볼 걸 그랬어요. 여자친구가 대학원에서 전시 쪽 공부하는 중이거든요. 저, 기획자님.

T. D. 정: 예. 다녀오세요.

우낙원: 바로 전화를 겁니다. 토피나? 응, 나야. 잠깐 통화돼? 내 공연 제목으로 전시를 하려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일이야? 다시 얘기해줄래? (사이) 응, 생리를 안 해? 다른 키트로 해봤어? 같이 가보자. 언제? (짧지 않은 침묵) 세상에. (사이) 아냐. 아냐. 늘 생각했지, 나도. 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그냥, 모든 거 다. (사이) 휴학하면 장학금도 끊길 테고. 석박사 통합이잖아. 외국인 학생 등록금을 다 내려면…. 아냐. 오해야. 토피나, 그런 말이 아니고. 일단 만나자. 어디야? 기숙사? 알겠어. 좀 걸릴 거 같아. (사이) 왜 소릴 지르고…. 여보세요? 여보세요? 

9

‘나’는 바닥에서 원고 한장을 집어 든다. 간이의자에 앉아 읽는다.

나: 뉴욕은 어디 있는 걸까요. 맨해튼 42번가는. 왠지 어떻게 해도 거기 가 닿을 수 없는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아직 시간이 되지 않은 것일까요. 모든 것은 지나치게 꿈 같은 꿈에 불과하고, 또 모든 것은 지독하게도 현실적인 현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실은 이미 미국에 와 있죠. 뉴욕에 와 있고 맨해튼 42번가에 도착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뉴욕 맨해튼을 찾고 있다면 그건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한국인으로서 생각하는 가짜 미국이 있고, 그 안에 부풀려진 가짜 뉴욕, 또 그 안에 더없이 팽창한 가짜 맨해튼 42번가. 중심이란 것으로 아무리 들어가려 해도 자꾸만 밀려납니다. 왜냐면 그건 허상이니까요. 스스로 중심을 만들고 스스로 아웃사이더가 됩니다. 그럴수록 더욱 더 중심에 속하고 싶어집니다. 버티자. 견디자. 살아남자.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아메리칸 조크에 왁자지껄 웃어대며. 영원히 빛나는 훈장이 달릴 그 날까지.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의 빛나는 50가지 가짜 별들이 등 뒤에 박히는 그 날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빛이 뒤통수에서 반짝 반짝. 사이렌. 사이렌. 입술 사이로 빛나는 어둠을 질질 흘리며 히죽거리는 네온사인 도시. 그토록 아름다운 쓰레기섬. 매순간 머릿속에서 어김없이 시작되는 (사이) 미칠듯한 재즈. 

10

T. D. 정: 코리안 스트리트의 도시락 전문점 ‘우리집’입니다.

우낙원: 기획자님, 죄송한데 급한 일이 생겨서.

T. D. 정: 무슨 일이신데요.

우낙원: 개인적인 거라…. 어떡하죠?

T. D. 정: 어쩔 수 없죠. 나머지는 통화나 메일로 해요.

우낙원: 와주셨는데. (진동이 울리기 시작)

T. D. 정: 에이, 괜찮아요. 받으세요.

우낙원: (휴대폰을 확인하고) 아뇨. 이따가.

T. D. 정: 하셔도 되는데.

우낙원: (계속 울리자) 잠시만요. (전화를 받으며) 여보세요. 응, 이따가 가면서 연락 줄…. 우는 거야, 토피나? 괜찮아? 아…. 미안해. (사이) 빨리 갈게. 내가 옆에 있어야 하는데…. 이제 갈게. 그래. 갈게. 응. (통화를 끊고) 저 죄송한데. 잠시만요.

T. D. 정: 예, 예, 괜찮아요. 천천히.

우낙원: 기획자님.

T. D. 정: 네, 작가님.

우낙원: 죄송한데 안 되겠어요. 이 제목은 연극으로 먼저 발표하려고요. 정식으로 무대 올라갈 때까지 제가 끝까지 가져가야 될 거 같아요. 헛걸음하시게 해서 죄송해요.

T. D. 정: 아뇨, 아니에요. 작품에 있어서 더 나은 걸 선택하시는 게 맞죠. 결심이 딱 서신 거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까는 어떤 일 때문에?

우낙원: 임신 소식이 있어서요, 여자친구가.

T. D. 정: 아이고, 축하 드려요. 큰 소식이네. 어서 가보세요. 모쪼록 꼭 올리실 수 있기를, 좋은 작품. (손을 건네며) 공연되면 소식 주시고요, 이것도 다 인연인데.

우낙원: (악수하며) 감사해요. 같이 나가시죠.

T. D. 정: (나서며) 제 차 타시죠. 그러면 되겠네.

우낙원: (따라 나서며) 감사해요. (사이) 저, 기획자님. 아내분께 어떤 선물해주셨어요, 아드님 임신하셨을 때? 

11

나: 이 다음부터 이어지는 문제의 장면들은 이렇습니다. (보고 읽으며) ‘나’는 경찰에 신고하고 출판사도 방문하지만 누구도 협조적이지 않다. 자신이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느낀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온 베트남 식당에 가 난동을 피운다. 급여가 밀린 건 자신이 J1비자를 가져서지 않냐며 악을 쓴다. 이 날 밤 ‘나’는 낮에 갔던 식당을 충동적으로 다시 향한다. 그리고 창문을 깨고 들어가 돈을 훔쳐 달아난다. 궁지에 몰린 ‘나’는 양성애자인 전 남자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새 여자친구의 아파트에 얹혀사는 처지였던 그는 ‘나’의 부탁을 외면한다. 그 와중에 아시안 패티쉬 클럽 ‘오리엔탈’에 대해 알게 된 ‘나’는 그곳에 딸린 불법숙박시설에 숨어살게 된다.

작가의 자기검열: 언제 얘기지?

나: 미국에 있을 때, 2015년이니까 5년 전인가.

작가의 자기검열: 대본으로 쓴 건?

나: 작년에 1년 동안. 그리고 지금까지 고치거나 더 쓰려고 했는데, 그게 안 되는 거야. 이게 전부 내 경험들이고, 또 1년에 걸쳐서 쓴 건데도 그대로 얘길 못하겠더라고.

작가의 자기검열: 이대로 어디 내진 않았던 거야? 공연을 일단 올려놓고 본다든지.

나: 안 냈지. 이대로 무대에 올리는 게 일단 나부터 안 되겠는거야. 그 동안 국내외로 사건 사고들 많았잖아. 그 뉴스들이랑 키워드가 너무 겹쳐서…. 퀴어로서 이야기까지 전부 나쁜 맥락으로 읽힐까봐. 관객들은 연극 보면서 어떻게 생각할까 싶고.

작가의 자기검열: 그래서 못 고쳤단 거구나. 그 걱정 때문에. 그럼 실제로 미국에 있을 때 넌 마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어?

나: 미국에 있을 때?

작가의 자기검열: 응, 미국에 있을 때.  

12

‘나’와 작가의 자기검열은 객석 쪽으로 나온다.

극 중 장면들은 인물 없이 무대기술만으로 연출된다.

음향과 조명은 점차 거세지다가 절정으로 치닫는다.

나: 이 대본을 고치고 있는 건 정작 내가 아닐지도 모른다.

작가의 자기검열: 나는 자꾸만 대본을 잃어버리고 자꾸만 노상강도를 당한다.

나: 신사역 5번 출구 방향 골목, 흑인 남자가 내 대본을 뺐어 갔다.

작가의 자기검열: 뉴욕에서 만난 강도를 서울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나: 그는 한 손엔 트럼펫을 다른 손엔 권총을 쥐고 있었다.

작가의 자기검열: 그 날, 서울에선 늦여름 장마가 시작됐고 노상강도를 당한 나는 112에 신고했다.

나: 하지만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강남지역 순찰대도 신사역 역무소 직원들도.

작가의 자기검열: 모두 내가 정신이 나갔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나: 노상강도요? 신사역에 그렇게 사람 많은데? 흑인이요? 권총이요? 트럼펫도?

작가의 자기검열: 대본을 잃어버린 건 아무한테도 안 중요했다.

나: 그 시각, 5번 출구 CCTV에 찍힌 사람이 나밖에 없단 말을 들은 나는 화가 나서 그곳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밤새 대본을 찾아 다녔다.

작가의 자기검열: 그 날, 뉴욕 맨해튼 외곽순환 도로의 홈리스들은 내 소설 원고를 불쏘시개로 썼다.

나: 그때 피웠던 모닥불은 결국 브라이언트 파크 인근 노숙인 캠프에서 대형화재로 번졌고 도합 4명의 사상자를 냈다.

작가의 자기검열: 그러나 그 날의 사건은 지극히 사소한 일로 여겨졌기에 해외토픽으로조차 다뤄지지 않았고, 나 또한 그 일에 대해 알 수 없었다.

나: 강남대로를 따라 신논현 방향으로 걷던 나는 눈에 익은 건물을 발견했다.

작가의 자기검열: 굵어지는 장맛비를 피하기 위해 건물 안으로 들어섰던 나는 내 소설을 출간하지 않으려 했던 그 편집자와 마주쳤다.

나: 편집자는 병원에 갔는지 묻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고 나는 가까스로 그곳에서 뛰쳐나왔다.

작가의 자기검열: (목소리만) 예술인의 든든한 동반자.

나: 라는 표어가 붙은 복도를 가로질러.

작가의 자기검열: (목소리만) 문화예술 가치의 사회적 확산 기여.

나: 라는 표어가 붙은 엘리베이터를 지나.

작가의 자기검열: (목소리만) 함께 창조하는 예술 현장 파트너.

나: 라는 표어가 붙은 화장실 앞으로.

작가의 자기검열: (목소리만) 예술가와 나란히, 시대와 나란히.

나: 라는 표어가 붙은 계단을 내려가.

작가의 자기검열: (목소리만) 시민에 다양한 문화예술 서비스를.

나: 라는 표어가 붙은 정문을 열고.

작가의 자기검열: (목소리만) 시민과 예술인의 목소리에.

나: 그렇게 그곳을 빠져 나와,

작가의 자기검열: 장맛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뉴욕 한인타운이 나왔다.

나: 웨스턴 32번가 코리안 스트리트,

작가의 자기검열: 아니, 어쩌면 거긴 NYC가 아니라 서울특별시였을지도 모른다.

나: 맨해튼 중심부가 아니라 강남 한복판이었을지도.

작가의 자기검열: 그곳은 한국에도 없고 미국에도 없는 회색공간,

나: 한국과 미국 사이 그 중간지대.

작가의 자기검열: 웨스턴 32번가 코리안 스트리트,

나: 태평양 한가운데 허공에 둥둥,

작가의 자기검열: 분계선 바로 그 위에 위치한,

나: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곳.

작가의 자기검열: 웨스턴 32번가 코리안 스트리트,

나: 아직 태어나지도 아직 죽지도 못한 이방인들의 환승구역.

작가의 자기검열: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몸이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온몸이 빗물에 젖고 손발이 붓고 있었다.

나: 이윽고 나는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작가의 자기검열: 숨이 막혔다. 비에 젖어 있는데도 자꾸 식은땀이 났다.

나: 그 가운데 나는 자꾸만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다.

작가의 자기검열: 그 날, 내 대본을 훔쳐 갔던 건 흑인 트럼펫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누구란 말인가.

나: 그 시각, 5번 출구 CCTV에 찍힌 사람은 왜 나밖에 없었던 걸까.

작가의 자기검열: 비 내리는 수도 서울, 비 내리는 뉴욕 맨해튼.

나: 쓰지 못하는 죄책감과 써버린 후의 참담함 사이를 오가며.

작가의 자기검열: 오늘은 과연 어떤 엄살과 과장, 미화와 비겁으로 내 자신을 꾸며낼 것인가.

나: 자신이 버린 껌종일 찾아 수십년 동안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도 있겠지.

작가의 자기검열: 서울 아니면 뉴욕에서도.

나: 그 날, 그 날, 그 날.

작가의 자기검열: (무한히 반복) 영원히 끝나지 않는.

나: (무한히 반복) 그 날의 대본 찾기.

위의 두 대사를 반복하며 ‘나’와 자기검열은 퇴장한다. 

13

우낙원: 비행기를 기다립니다. 토피나는 잠깐 잠이 들었고요. 고단했나 보네요. 저는 고개 들어 활주로를 봅니다. 지금 들어오는 저 비행기일까요? 아니, 다른 게이트로 방향을 틀었군요. (사이)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는 길처럼 보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끝내고 돌아가는 길이겠군요. 그럼 우리는? 왠지 둘 다 같기도 합니다. 돌아가는 거지만 동시에 새로이 떠나는 길이랄까요. 그렇게 떠나려고 했던 한국으로 다시 갑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건지도 모르고 모든 게 다 변한 건지도 모릅니다. 한국에 가서 공연을 올리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5년? 아니면 그 이상? 10년이 걸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더 이상 쫓기지 않으려고요. (사이) 저기 비행기가 들어옵니다. 저 비행기에요. JKF국제공항발, 인천국제공항착. 이제 저걸 타면 떠나는 거네요. 함께 떠납니다. 저와 토피나 그리고 우리 아이까지. 세 사람 모두 함께.

서서히 어두워지는 조명. 막. 

14

하나, 둘, 셋 하는 소리와 함께 전주가 시작되면

모든 배우들이 스탠딩 마이크를 끌고 나온다.

밥 딜런Bob Dylan의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 혹은

백Beck의 <루저Loser>를 연상시키지만 둘 다 아닌 엉터리 즉흥곡.

따로 또 같이 조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네. (샌프란시스코!)

주말 새벽 취한 채 종로 이태원을 서성이는, (조니!)

귀여운 조니는 동원훈련 3년차 지정 병력.

네게 상륙하고 싶어. (조니 캘리포니아 광역시!)

인천 떠나 고향을 가고 싶은 조니. (샌프란시스코!)

그러나 미국비자 없어, 비자가 없다네. (조니!)

원해? 우리 귀염둥이 조니 출생의 비밀.

오늘 밤도 다시. (조니 캘리포니아 광역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손 흔드는 동안

커져가는 연주와 줄어드는 조명. 커튼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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