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 안에서 왕궁터 출입로 등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 발굴
“위치 논란 잠재울 수 있는 성과… 풍납토성 이래 최대 규모”
웅진(공주) 도읍기(475~538년) 백제의 왕궁이 충남 공주 공산성(사적 제12호) 안에 있었다는 가설을 밑받침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왔다. 궁터 출입로와 궁 관련 시설을 만들기 위해 당시 백제가 벌인 대규모 국가 공사의 흔적이다.
24일 공주대박물관은 지난해 6월부터 진행 중인 충남 공주 금성동 공산성 내부 쌍수정 일대 백제 왕궁터 추정지 발굴 조사 과정에서 궁터를 출입하는 길 및 궁 주변 시설을 건립하려는 목적으로 국가가 시행한 대규모 토목공사 흔적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쌍수정은 조선 시대 충청도관찰사 이수항이 1735년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정자다.
박물관에 따르면 이번에 발굴된 왕궁지 출입 시설에는 전형적인 백제의 토목공사 양식이 적용됐다. 폭 3~5m의 길 양쪽에 높게 성토다짐을 한 구조인 해당 출입 시설은 동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운 지형에 길이 50m, 너비 36m, 깊이 3.5m 규모다. 성토다짐은 흙을 쌓고 다지는 과정을 반복, 지반을 탄탄하게 만드는 토목 기법이다. 성토 유실 방지를 위해 경사면에 강돌(川石)과 깬돌(割石)을 깐 것도 특징이다.
임금이 머무는 궁궐 문 양 옆에 설치하는 2개의 높은 대(臺), 즉 ‘대궐(大闕)’로 추정되는 공산성 ‘문궐(門闕ㆍ궁 같은 곳의 문)’ 시설이 있다는 건 공산성이 왕의 임시 피난처가 아닌 거주 왕성이라는 뜻이다. 박물관의 안지혜 학예사는 “지금껏 공산성 내에서만 80기의 건물지 등 백제 유적이 발굴돼온 만큼 이번 조사 결과는 웅진 시대 백제 왕궁 위치 논란을 사실상 잠재울 수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이번에 확인된 유적들에서 나타나는 큰 규모의 성토다짐이나 외벽 보호 시설은 백제 초기 한성(서울) 도읍기(기원전 18년~기원후 475년) 왕성인 풍납토성에서 발견되는 토목구조다. 이현숙 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풍납토성 이래 최대 규모 백제 토목공사 흔적인 데다,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축조한 국가 시설임을 확인해주는 자료”라고 했다.
길이 2.4㎞의 공산성은 무령왕릉이 포함된 공주 송산리 고분군과 더불어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대표적인 웅진 시대 백제 유적이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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