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야 할 연말에… 가장에 의한 일가족 극단적 선택 정당한가
“의사결정권 없는 자녀는 무슨 죄?” vs “얼마나 사정이 어려우면…”
5년 전 ‘송파 세 모녀’, 지난달엔 성북동 네 모녀에 이어 인천에선 딸 친구까지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모두 생활고 때문으로 알려졌다. 가족의 정을 느끼며 따뜻해야 할 연말에 경제적 처지를 비관한 극단적 선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부모에 의한 자녀 동반 참사에 대해 ‘자녀가 소유물도 아닌데 인륜에 반하는 행위’란 비판과 함께 ‘얼마나 사정이 어려우면 그랬겠냐’는 동정까지 주변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는 소식이 계속되고 있다.
성탄절을 이틀 앞둔 23일 대구의 한 주택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생활고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들 가족은 8, 9년 전부터 경제적 어려움이 심했지만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약층 발굴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는 지적이다.
대구경찰과 대구소방안전본부 등에 따르면 23일 오후 8시 9분쯤 대구 북구 한 빌라 안방에서 A(42), B(42)씨 부부와 중학생 아들(14), 초등생 딸(11)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시신은 중학생 제자가 등교하지 않는다는 담임교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발견했다. 경찰은 방문이 안으로 잠겨있고,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점으로 미뤄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편함에는 대출잔액 4,000여만원, 2,000여만원짜리 납부 독촉 고지서와 10월부터 요금이 체납됐다는 도시가스요금 고지서, 주정차위반 과태료 고지서 등이 발견됐다.
경찰조사 결과 이들은 2011년 경북 경산시에서 대구로 이사했다. 2013년부터 방 두 칸짜리 현 거주지에서 살았다. 현재 임차료는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30만원으로 전형적인 서민주거형태다. 이 무렵부터 경제사정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한번 사업에 실패한 남편은 아내와 함께 안간힘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부부의 소득은 최저임금을 조금 웃돌았지만 이마저도 일정치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남편은 아내 명의로 사업체를 운영한 흔적이 있지만, 신고 소득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아내도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한 업체에 취업해 월 200만원 가량을 번 것으로 확인되지만 지속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들은 기초수급자로 지정되지 않았다. 아내는 2013년 초 주민센터에 들러 차상위계층 신청을 문의했지만 전세보증금과 2002년식, 2007년식 1톤 트럭과 2007년식 승용차 등의 재산 때문에 불발됐다. 2016년부터 자녀들의 방과후 수업료 정도를 지원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에는 남편이 트럭으로 식당 등에 육류를 배달해 주는 일을 한 것으로 보이지만 소득수준은 확인되지 않는다”며 “친척들에게도 어렵다는 말을 자주 했고, 아들도 주변에 비슷한 말을 했던 것으로 봐 생활고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26일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가리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가족동반 극단적 선택이 우리나라에 많은 것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서구와 달리 가부장적 문화가 워낙 뿌리깊고, “내가 가면 남은 가족은 어떡하나”는 현실적인 정서 때문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내가 낳은 자식이라도 독립된 인격체이며, 자녀를 위하는 길이 아닌 ‘범죄’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말 성탄절 분위기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기가 어려워지며 가족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가 늘고 미래에도 희망이 안보일 때 극단적 선택을 할 수 있다”며 “중산층이 몰락하고 각자도생이 심해지면 이런 사건이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녀 살해 후 자살의 경우 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라면서도 “복지예산이 전례없이 늘었는데도 사건이 반복되는 걸 보면 예산이 잘 집행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취약층 발굴 시스템은 갖춰졌는데 그들을 찾아가 도울 인력이 부족하다”며 “CC(폐쇄회로)TV는 있으나 찾아갈 경찰관이 부족하듯 발굴을 넘어 도움까지 이뤄지도록 예산관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정광진 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김민규 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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