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심사평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위원. 왼쪽부터 박상순 시인, 김민정 시인, 서효인 시인. 고영권 기자

다락방에 몇 년은 묵힌 것 같은 누르스름한 종이에 볼펜으로 눌러쓴 시가 있었다. 잘 풀리지 않는 가정사의 고달픔과 그럼에도 살고자 하는 의지를 쓴 것이었는데, 시보다는 일기에 가까웠다. 당연히 박스에 다시 들어갈 원고였지만 어쩐지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다. 시가 되든 안 되든 쓴다는 행위의 거룩한 순간을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 중에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순간은 없을 것이다. 이번 신춘문예에 시를 보낸 모든 이들이 이미 시인이라 믿는다. 그분 중에서 한 명의 시인을 공식적으로 호명할 수 있어 두렵고 영광이다. 안타깝고 기쁘다.

문학상이나 신춘문예 혹은 각종 지원 사업 심사위원은 수많은 응모작 중에 당선작 일부를 골라야 하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지 최근의 문학 흐름을 짚는 선지자나 응모작의 전반적 수준을 평가하는 심판자가 아니다. 누군가는 하긴 해야 하나 마땅한 이가 달리 없어 그 자리를 꿰찬 것이라 생각함이 옳다. 그러니까 심사위원은 각자의 양심과 문학관에 따라, 심사를 최대한 ‘잘하면’ 된다. 내가 무언가 놓칠 수 있다는, 겸손함에서 비롯된 불안감이 그 심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차도하 씨의 ‘침착하게 사랑하기’ 외 4편이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골똘하게 보냈던 긴 예심 시간과 달리 본심에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탁월했다. 다소 작은 세계를 말하려는 듯한 제목과는 달리 쉬이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를 다루는 용기가 돋보였다. 천진해 보이는 어투가 단단한 세계를 뒷받침하고, 너른 시선이 가벼운 문체를 단속했다. 이 같은 특성을 묶어 범박하게도 ‘새로움’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리라. 무엇보다 기성 시인 누구도 쉽게 떠올릴 수 없게 한 개성의 충만함이 눈부셨다.

‘온몸의 외국어’외 5편을 보내준 고명재씨와 ‘모든 끝은 둥글다’ 외 4편을 보내준 윤혜지씨의 원고도 함께 논의했다. 충분한 시적 성취가 엿보였으나, 구태여 발견한 작은 이유들로 당선작으로 선하지는 못하였다. 어디에선가 다시 이름이 불릴 날이 있으리라 믿는다. 차도하 시인께 축하의 마음을 건넨다. 찬란한 순간의 공간에서 영원한 고통의 세계로 넘어온 것을 환영한다. 이제 시작이니, 크게 숨을 들여 마셔도 좋겠다. 

서효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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