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면접왕 이형’ 이준희 대표
‘성공하는 면접은 시작이 다르다’
‘상사의 의도를 파악하는 사람을 위한 의사소통법’
‘성과 내려면 따라 해야 할 4가지 법칙’
떠오르는 주제가 있나요? 자기계발서 관련 제목들이죠. 구체적으론 유튜브 채널 ‘면접왕 이형’에서 나오는 동영상 목록입니다. 요새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이 채널을 제법 활용합니다. 자기소개서 작성방법, 1ㆍ2차 면접방법, 최종 임원 면접방법에 임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유튜브를 진행하는 인물은 ‘이형’으로 불리는 이준희(38) 얼라이브커뮤니티 대표입니다. 이형은 대기업 인사팀 출신으로 그가 건네주는 조언은 밀레니얼에게 가뭄 속 단비 같다는 평가를 받곤 합니다. 면접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이런 종류의 콘텐츠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이죠. 더구나 돈 없이는 취업 준비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유튜브에서 접하는 영상은 경제적 부담도 줄여주죠.
그러나 이런 ‘면접 교본’이 성행하는 현실이 유쾌한 것만은 아닙니다. 면접은 기본적으로 개성과 역량을 평가하는 과정인데 이런 콘텐츠를 접하다 보면 역설적으로 개성을 드러내는 게 두려워지기 때문이죠. 공정 가치에 민감한 밀레니얼에게 정답을 제시하는 듯한 취업 길라잡이 영상의 인기는 평가체계에 대해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최근의 취업 준비과정을 밀레니얼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 가이드라인 제시해 자주 이용
배부른소크라테스(배테)=면접 준비할 때마다 ‘면접왕 이형’ 콘텐츠를 찾아보는 편이야. 은근히 도움을 많이 받거든. 주변에 사기업 준비하는 친구들은 더 자주 애용하는 것 같아.
피곤한칸트(피칸)=면접 과정을 자세히 몰랐는데 이 콘텐츠를 보면서 어떤 체계로 진행되는지 알게 됐어. 면접을 처음 준비하는 사람은 모든 게 막연한데 면접 전형의 전반적인 구조나 과정을 파악할 수 있게 돼서 유익했어.
숭례문뽀글이(뽀글이)=면접 일정이 잡히면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가 많아. 전문가랑 약속 잡고 찾아가기도 애매하단 말이야. 신뢰할 수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를 찾다 보니 이런 채널을 애용하게 된 것 같아. 돈도 안 들어서 큰 부담도 없잖아. 요즘엔 취업준비에 돈이 굉장히 많이 들잖아.
도논=면접을 체계적으로 준비해본 적이 없어서 이 채널 자체를 몰랐어. 개인적으로 이런 콘텐츠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잘못된 내용이 있기 때문이 아니고, 이런 콘텐츠가 호응을 얻는 현실이 슬퍼서 그래. 신자유주의의 종착지가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생각했어. 그래서 최대한 회피하고 싶었어. 채널을 보면 면접의 모든 요소들을 항목화해서 올려놨잖아. 난 그게 ‘너희가 무엇을 불안해 해야 할지 모조리 알려주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철이 없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면접은 그냥 ‘나를 보여주는 자리’라고 생각하거든. 이 채널은 누구에겐 현실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그걸 세세하게 도와주는 수단이겠지만, 나에겐 회피하던 현실을 강제로 마주한 느낌이었어.
배테=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한두 번 면접에서 떨어지고 나니까 마냥 그렇게만 임할 수가 없겠더라. 특히 나는 ‘1분 자기소개’, ‘마지막 한 마디’처럼 일반적이면서도 가장 추상적인 질문들이 늘 어려웠어. 영상에서 가이드나 팁을 제시해준 게 도움이 많이 됐어.
누헨지니=나는 입시처럼 정답이 있는 시험에 익숙한 탓인지 이런 콘텐츠를 찾게 된 것 같아. 면접에는 정답이 없으니까 막연한 두려움이 있어. 누군가 알려주는 게 있다니까 자연스럽게 그걸 찾게 되는 거지. 우리가 정보를 찾기 위해 취업 카페를 이용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 같아. 한편으론 언제까지 이런 인강을 들어야 하나 ‘현타’(헛된 꿈에 빠져 있다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시간)가 오기도 해.
◇ 솔직한 답변 대신 정답만 찾게 돼
여의도불주먹(불주먹)=면접은 사람 됨됨이나 생각을 주고 받는 자리잖아. 그런데 면접을 위한 전문강의가 있고, 이런 강의가 각광받고, 수요가 넘치는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배테=면접이 정형화돼 그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거지. 개인 생각이나 개성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철저히 준비된 나’, ‘면접관들의 니즈에 맞춘 나’를 보여주는 자리로 변질된 것 같아. 그러니 면접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콘텐츠에 목매게 되는 거고.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아. 시험 보는 회사에 맞춰서 날 재조립하는 기분이 들거든.
도논=면접이란 게 직무와 관련된 내 영혼을 탈탈 털어 보여주는 자리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런 마음이 없지 않아. 그러나 막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증거들이 쌓여가니 너무 속상할 따름이지. 있는 그대로의 날 보여주면 될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지만, 면접관이 내게 기대하는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닐 수도 있잖아.
불주먹=그런데도 ‘만들어진 답변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잖아.
배테=과연 그럴까 싶어. 면접에서 대놓고 ‘노조 가입할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거든. 나도 예전엔 그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을 솔직히 말하면 된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어. 그런데 자꾸 솔직한 답을 내놓으면 면접에서 떨어지니까 결국 나를 면접이란 정형화된 틀에 맞추게 되는 것 같아. 솔직한 답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 들어.
피칸=맞아. 면접을 준비하면서 내 개성이 돋보이게 갈고 닦는 게 아니라, 있던 개성마저 회사에 맞춰 깎는 느낌이야.
◇ 면접관들의 태도와 생각도 문제
피칸=갈수록 면접이 갖는 특수성이 뚜렷해지는 것 같아. 그래서 우리가 겪었던 면접, 그리고 취업 전반에 대해서도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 ‘면접왕 이형’ 같은 콘텐츠를 참고해서 1분 자기소개를 짜서 준비해 갔더니 다들 답변이 비슷한 거야. 면접관들이 모두 ‘뭐 보고 준비한 거냐. 답변이 왜 그렇게 비슷하냐’고 물어봤다는 거야.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면접 콘텐츠를 애용하던 나도 ‘이게 맞는 건가’라는 회의감이 들더라고.
배테=그게 면접관들의 문제라고 생각해. ‘이형’ 같은 경우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기본 정도만 가르쳐 주거든. 그런데 기본에 맞춘 답변을 했다고 비웃은 면접관도 문제 아닌가.
도논=최근 회사 인사팀 간부로 있는 친척과 밥을 먹었어. 대뜸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요즘엔 취업 준비한다고 돈 들여 학원도 다니고, 따로 스터디도 한다고 들었어. 내가 보기엔 좀 유난이야. 과하게 준비한다고 하루 아침에 남다른 인재가 되는 건가.” 듣는 순간 화가 났어. ‘너희들만의 세계가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하는 거야. 힘이 빠지는 걸 넘어서 헛웃음이 나오더라. 회사 인사팀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밀레니얼의 고민을 좀 이해할 줄 알았거든.
배테=나도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너무 답답해. 회사 간부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잖아. 특히 시험 볼 때 그걸 느껴. 여러 회사에 시험 치러 다니다 보면, 문제 출제할 때 회사에서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가 느껴져. 정말 성심성의껏 출제해주는 데가 있는가 하면, 누가 봐도 아무 생각 없이 준비한 회사도 많아. 정말 속상한 게 뭔지 알아. 그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냈는데 우리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답을 찾아낸다고.
누헨지니=그렇지. 성의라도 보이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나마 이해되는데, 출제할 때조차 그렇게 정성을 들이지 않아놓고 우리보고 유난이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고 생각해.
뽀글이=그들이 성의를 보이는 건 당연한 거야. 성의를 갖췄다 해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는 거지.
도논=어른들은 아마 ‘공채 제도’의 부작용에 대해 잘 모를 거야. 공채가 한 인간을 어떻게 개조시켜 놓는지를 말이야.
불주먹=생각할수록 힘 빠지는 현실이야. 우리는 어디라도 들어가려고 인생을 바치듯 모든 걸 쏟아 붓고 있는데, 이게 우리 사이에서만 공감을 얻고 있으니까.
누헨지니=경험해본 사람은 알 거야. 면접 같은 높은 차수 전형에서 떨어지면 그 순간 사람이 먼지가 되듯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잖아.
배테=맞아. 그냥 아파. 나는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들에 비해 감정기복도 크지 않고 우울감도 잘 안 느꼈거든. 어떤 상처를 받아도 회복력이 좋은 편이었는데, 취업 준비기간이 길어지니까 성격이 확 바뀌었어. 박탈감, 좌절감이 반복되다 보니까 결국 지치고 변하더라. 정말 취업이라는 게 20여년 동안 누적해온 나만의 성격도 없애버릴 수 있겠구나 하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
뽀글이=문제는 ‘청년’이라는 취업 당사자들이 다른 세대로부터 타자화된다는 거야. 면접관 자신들은 무슨 말을 해도 돌멩이가 날아오지 않잖아. 공감능력이 떨어진 채 쉽게 말하게 되는 이유지.
배테=수능시험을 볼 때만 해도 아이들을 안쓰럽게 바라보잖아. 매년 수능일에는 온국민이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하잖아. 그에 비해 취업 문제는 그 세대가 아니면 크게 공감을 못해. 그러니까 “너희 배부른 소리 하는 것 아냐. 눈만 조금 낮추면 취업 다 할 수 있어”와 같은 말까지 나오지.
◇ 평가과정 공개 안돼 불만
불주먹=면접이 정성적 평가를 많이 고려하는 과정인데도, 취업을 준비하는 밀레니얼들은 정답이 존재하는 것처럼 하나의 가르침에 의존하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잖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지.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
배테=모든 평가를 정량화해야 한다고 생각해. 정성평가의 장점이 분명히 있지만, 평가자 개인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고 이걸로 인해 평가 받는 사람들은 좌절과 박탈감을 겪게 되잖아. 공무원 시험처럼 정량평가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늘 탈락 이유가 납득돼서 불만이 적더라고.
누헨지니=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 면접은 유지하되 내용을 공개해줬으면 좋겠어. 속기록 같은 것 말이야. 대기업은 면접 내용을 다 속기하더라고. 그런 기록물을 공개하면 좋을 것 같아. 면접 내용이 자료로 남아 참고할 수도 있고, 탈락자가 결과를 납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테니까.
뽀글이=맞아. 지금은 무엇 때문에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이의제기를 할 수도 없잖아.
도논=정성평가의 취지는 너무 좋아. 토익 점수처럼 ‘스펙’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개개인의 역량이나 인성을 깊이 꿰뚫어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제대로 된 면접을 위해선 현실적으로, 물리적으로 제약이 너무 많잖아. 면접관 1명이 담당하는 지원자 수를 줄이거나 면접관 수를 늘리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배테=나는 면접이란 절차 자체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야. ‘스펙’이 절대시된 우리 사회에선 정성평가 자체가 공정하게 이뤄질까. 면접 때도 결국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이 주로 나오고, 역량만 보여주는 방식으로 어필해야 하잖아. 그게 면접이 정량화된 증거라고 생각해.
피칸=많은 기업들이 현재의 정성평가가 최선이라고 말해. 하지만 청년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본다면 지금이 최선이 아니란 걸 알 거야. 본인들 편의대로만 전형을 진행하지 말고, 면접 대상인 청년들에 대해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예의를 좀 더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
도논=이 시스템은 심각한 요소들이 많은데도 오롯이 청년들만 그걸 감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 같아. 주거문제 같은 다른 청년문제는 모든 세대가 짐을 나눠서 지려고 하잖아. 그런데 취업은 정말 우리만 고통 받는 거잖아. 그러니까 면접관 세대에 해당하는 사람들도 뭔가 바꿀 생각이 없는 거지.
정리=이주현 인턴기자
참여=노희진, 이정원, 정해주, 차승윤, 한채영 인턴기자
※ 밀레니얼들이 열광하거나 주목하는 ‘그들’에겐 어떤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밀레니얼 세대인 한국일보 인턴기자들이 밀레니얼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혹은 밀레니얼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을 선정하고 이들을 둘러싼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비하는지 방담 형식으로 소개(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밀레니얼들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숙제로 ‘자소서’를 써 왔지만, 사실 ‘세대소개서’를 쓸 때는 난감합니다. 세대를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니까요. 그저 좋아하는 ‘인물’, 화제가 되는 ‘인물’을 통해 젊은 개개인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보고 듣고 느끼는 점을 있는 그대로 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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