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품 성공이 쉽지 않은 국내 뮤지컬계에서 ‘랭보’는 모범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초연 당시 3개월 동안 관객 3만명을 끌어 모았다. 첫 무대였던 데다 335석짜리 대학로 소극장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숫자였다. 게다가 개막한 지 43일 만에 중국에서도 동시 공연되는 새 기록까지 세웠다. 각본, 무대연출,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탄탄하다는 입소문 덕이었다. 올해 공연 역시 연일 매진됐다.
뮤지컬 애호가들의 눈길이 쏠린 작품이었던 만큼 ‘골수팬’ 규모가 만만찮다. 이 골수팬들은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1854~1891)와 폴 베를렌느(1844~1896)의 만남과 사랑, 용서를 제 각각 달리 표현해 내는 각 배우들의 연기를 비교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배우 간 조합을 맞춰 여러 번 보는 이들이 특히나 많았던 이유다. 재관람이 이어지자 기획사 측이 이벤트를 준비했다. 9번째 다시 봤을 때, 랭보의 시집을 증정키로 한 것. 아무리 그래도 한 작품을 9번이나 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준비한 랭보 시집 2,000부 가운데 3분의 2가 소진됐다. 이 작품을 9차례에 걸쳐 보는 사람이 최소한 1,300명은 넘는다는 얘기다.
2019년 주요 뮤지컬들도 ‘N차 관람객’ 인기가 상당했다.
25일 한국일보가 인터파크에 의뢰해 올해 인기 상위 10개 뮤지컬(지난달 중순 기준) 예매자를 분석한 결과, 총 예매자 37만8,478명 가운데 12.7%(4만8,050명)가 같은 작품을 2번 이상 다시 관람했다. 재관람 기준은 ‘동일 작품을 다른 날짜에 예매한 경우’로, 지방 투어가 있을 경우 서울 공연 예매자에 한해 집계했다.
관람객 1명의 재관람 횟수가 가장 많은 작품은 지난 8월 개막한 ‘마리 앙투아네트’였다. 공연 기간 약 3개월 동안 1명이 78번이나 본 것으로 나왔다. 총 재관람 인원 역시 2,641명에 달한다. 이들이 재관람한 횟수는 7,609번에 이르렀으니, 1명당 평균 2.9회 정도 작품을 본 셈이다. 아이돌 그룹 뉴이스트, 워너원(Wanna one) 출신 황민현과 빅스의 정택운 등이 출연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스테디셀러인 ‘지킬앤하이드’는 재관람객 총수가 가장 많았다. 무려 1만2,635명이 2회 이상 관람해 3만8,560번(1인당 평균 3.1번)을 봤다. 한 관람객은 이 작품을 56번 봤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지킬앤하이드’의 서울 공연 기간이 6개월 이상이었고 배우 조승우 등 티켓파워가 상당한 배우들이 포진해 있었다는 점에서 관람객의 발길을 여러 번 이끈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킬앤하이드’에 이어 ‘사의찬미’(재관람인원 6,691명), ‘그날들’(5,910명), ‘스위니토드’(5,234명), ‘벤허’(5,221명) 등이 재관람객을 5,000명 이상 모았다.
10개 뮤지컬의 재관람객 4만8,050명 가운데 88.8%는 여성 관람객이었다. 20, 30대는 73.7%에 달했고, 40대 16.8%, 50대 5.0% 순이었다. 10대(3.2%)와 60대 이상(1.3%) 비율도 적지만은 않았다.
일각에선 이러한 N차 관람 문화를 두고 ‘빠’에 기댄, 팬심에 기반한 ‘회전문 관람’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국내 뮤지컬 시장만의 특징은 아니다. 2002년 한 영국인 관람객은 웨스트앤드 뮤지컬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를 800회나 재관람한 것으로 집계돼 영국 공연계를 놀라게 한 적 있다.
원종원 뮤지컬평론가(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모든 이들이 특정 배우에 대한 팬심 때문에 재관람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뮤지컬 장르가 이야기와 음악이 얽혀 있는 매력적 장르이다 보니 작품을 여러 번 관람하는 관객들이 많고 이는 영미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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