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가까이 “개혁” 외쳐놓곤 밥그릇 싸움에 누더기 개편
석패율제 무산, 거대 양당 기득권 벽 못 넘어… 3+1 “참담”
여권이 호기롭게 추진한 선거제 개혁이 기득권의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올해 초 ‘패스스트랙 무력 충돌’을 시작으로 여야는 공직선거법 개편 문제를 놓고 1년 가까이 대전을 벌였다. 더불어민주당은 범여권 소수 정당들과 손 잡고 ‘개혁하자’를 외쳤고, 자유한국당은 ‘지키자’로 맞섰다. 표면적 결과는 개혁파의 패배에 가깝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지 않았다. ‘4+1’ 협의체(민주당ㆍ정의당ㆍ바른미래당ㆍ민주평화당ㆍ대안신당)가 23일 합의한 선거법 단일안을 보면, 민주당은 ‘실속’을 챙겼다. 개혁을 퇴색시킨 대가로 기득권을 지킨 것이다.
4+1은 국회 의석 구조를 현행(지역구 253석ㆍ비례대표 47석ㆍ총 300석)대로 유지하고,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30석에만 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선거제 개편안에 최종 합의했다. 올해 초 패스트트랙에 올린 ‘지역구 225석ㆍ비례대표 75석ㆍ연동률 50%’ 원안에서 후퇴를 거듭한 안이다.
비례대표 확대는 무산됐고, 지역구 선거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구제하는 석패율제 도입도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특정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 받기 위한 최저 정당 득표율(봉쇄 조항)도 현행 3%를 유지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요구가 거의 모두 관철된 결과다. 비례대표 30석에 연동률 50%를 적용한 것을 제외하면, 현재 선거법에서 바뀐 게 사실상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같은 최종 단일안으로 가장 큰 이득을 누리는 정당은 민주당인 것으로 나타났다. 4+1의 단일안으로 총선을 치른다고 가정하고 현재 정당 지지율(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의 23일 발표치)을 적용해 집계한 결과, 민주당은 현재 의석(129석)보다 7석 증가한 136석을 차지한다. 정의당은 7석 늘어난 13석, 한국당은 2석 증가한 110석을 얻게 된다. 바른미래당은 11석을 잃어 17석에 그친다.
4+1 단일안으로는 현재의 거대 양당 구도를 허물지 못한다는 얘기다. ‘민의를 국회 의석 수에 최대한 정확하게 반영해 표의 등가성을 강화하겠다’는 선거제 개혁 취지가 실종된 셈이다. 더구나 민주당과 소수 정당까지 합한 범여권 진보 연대가 국회 의석의 과반을 점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민주당으로선 잃은 게 거의 없다. ‘합의가 불발되면 선거법 원안을 표결 처리하겠다’면서 민주당이 선거제 개편 무산 카드까지 꺼내들며 소수 야당을 압박한 결과다.
민주당은 선거제 단일안 마련에 고무된 분위기다. 이해찬 당 대표는 “(협상을 이끈) 이인영 원내대표의 리더십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지역구 숫자가 줄어들지 않아 의원들의 반발을 최소화한 것도 성과”라고 했다.
정의당 등 소수 야당은 선거제 개편안 후퇴에 ‘참담하다’고 했지만 이득은 챙겼다는 평가다. 지역 기반이 약한 정의당은 선거제 개편안의 가장 큰 수혜자로, 비례대표로만 10석 이상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민주평화당과 대안신당도 지역구 축소를 저지해 호남 의석수를 지켜냈다. 바른미래당은 총선에서 정당 득표를 최대화해 의석수를 얻겠다는 계산이다. 각 당의 ‘밥그릇 싸움’이 선거제 개편안 원안을 누더기로 만든 셈이다.
현재 의석수를 유지할 가능성이 커진 한국당 입장에서도 큰 손해는 아니다. 한국당은 4+1 선거법 논의에서 일절 배제돼 있었지만, 민주당과 한국당은 물밑에서 의견 교환을 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4+1 협의체에서 논의한 개편안은 한국당 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더 이상 한국당이 반대할 명분이 없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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