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공정위 제소 ‘을의 반란’ 주목
대형사는 “계약상의 조치” 반박
대형 해운사와 외항화물선 대선(貸船) 계약을 맺었던 소형선사가 “갑질을 당했다”고 호소하며 공정거래위원회의 문을 두드렸다. “수송 물량이 줄어들자 계약을 파기하기 위해 탱크 청소 문제를 빌미로 삼았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대형 해운사가 “계약 종료 책임은 해당 선사에 있다”고 맞서, 갑을관계가 명확한 해운업계에서 이례적인 ‘을의 반란’이 어떻게 결론날지 주목된다.
23일 W선박에 따르면 연매출이 1조원이 넘는 S사의 화물 운송에 자사의 4,700톤급 화물선을 처음 투입한 건 2014년 2월이다. 선박이 한 척뿐인 W선박은 외항화물운송사업면허가 없어 면허를 가진 A사와 용선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S사에 선박을 제공했다. 이후 올해 6월까지 일본을 오가며 S사를 대신해 윤활유 원료 등을 운송했다. 2017년 말에는 용선계약이 한 차례 연장됐다.
W선박과 S사의 설명을 종합하면 양사의 갈등은 5년간 윤활유 원료를 실어 나른 화물선 탱크의 청소 상태에서 시작됐다. S사가 올해 5월 탱크 청소를 요구하자 W선박은 6월 초 완료를 목표로 청소에 돌입했다. 윤활유 원료는 정제된 유류에 비해 찌꺼기와 불순물이 많아 주기적으로 탱크 청소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W선박은 “청소 완료 전 S사가 점검을 한 뒤 결과가 미흡하다며 작업 기간 용선료를 지급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W선박은 탱크 청소가 표면적 원인일 뿐 줄어든 물량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절감이 본질적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S사가 탱크 청소를 요구한 건 2017년 한 차례뿐이었고, 당시에도 청소에 실패했지만 계약을 연장해 운송을 계속한 게 근거라는 설명이다. 매번 운송할 때마다 탱크를 청소하면 운송 비용이 상승해 청소 없이 배를 띄우는 데 용선주도 암묵적으로 동의해왔다는 것이다. W선박 관계자는 “일본 업체가 공장을 대대적으로 수리하면서 운송 물량이 줄어 들자 S사가 우리를 배제한다는 소문이 올해 4월부터 업계에 돌았다”며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계약을 일찍 중단하려고 탱크 청소를 문제 삼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반면 S사는 계약서 상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고 W선박은 계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 같이 머리를 맞댈 문제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S사 관계자는 “선주가 W선박인 것은 맞으나 선박을 직접 빌려 쓰는 구조가 아니고 우리는 A사하고만 계약 관계가 있다”며 “(W선박과) 계약 자체가 없기 때문에 분쟁 중인 상황도 아니다”고 밝혔다.
계약이 파기된 이유에 대한 양사 설명도 엇갈린다. W선박은 “S사가 청소 비용을 전가하고는 일방적으로 휴항을 통보해 지난 9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헐값에 선박을 매각했다”고 밝혔다. 반면 S사는 “W선박이 청소를 거부하다가 배를 매각했으니 책임도 그쪽에 있다”는 입장이다.
W선박은 S사를 지난 8월 공정위에 제소했지만 양측 간 조정이 성립하지 않아 사건은 여전히 계류 중이다. 공정위 측은 “법률 위반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업에 피해가 생길 수 있어 사건에 대해 어떤 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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