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시절 첫 헌혈… 26일 444회 헌혈 예정, 대구경북지역 최고
※2019년 기해년이 저물어간다. 대구경북에서도 다양한 분야에서 이웃들이 공동체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묵묵히 믿음을 실천한 이웃들을 소개한다.
“지금도 헌혈할 날짜만 꼽고 있습니다. 건강한 피를 위해 매일 함지산을 오릅니다.”
2017년 30여년의 공직생활을 대구시 동부여성문화회관 행정차량관리 및 운행담당으로 마감한 길용택(62)씨는 ‘헌혈왕’ 칭호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헌혈 회수만 443회로 대구경북에서 최고다. 헌혈유공장 금장과 은장, 적십자 헌혈유공장 최고명예대장 등 헌혈을 통해 받은 상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길씨가 처음 헌혈을 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인 1975년이다. “백혈병에 걸린 친구를 돕기 위해 헌혈을 처음 한 후 습관처럼 시간이 나면 헌혈을 하고 있다”는 그는 한 달에 2회, 한 해 20여 회 헌혈을 이어오고 있다.
길씨는 “2주에 한 번씩 할 수 있는 혈장 헌혈을 주로 하고 있다”며 “지금까지 헌혈센터에서 먹은 초코파이만 해도 1,000개는 넘을 것”이라며 웃었다. 그는 26일 올해 마지막 헌혈을 한다.
그가 헌혈 400회를 달성했을 무렵은 공직생활을 마감하던 시기와 겹쳤다. 길씨는 “정년이 섭섭하기도 했지만 헌혈 400회 달성이 공직생활 마감을 축하하는 기념식 같은 기분이 들어 흐뭇했다”고 말했다.
가족들도 길씨의 영향으로 헌혈 대열에 동참했다. 길씨의 아들이 50여회, 부인도 20여회 가량 헌혈했다. 헌혈가족이다. 길씨는 “스스로 헌혈을 많이 하다 보니 집에도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전해진 것 같다”며 뿌듯해 했다.
길씨의 양 팔은 수 많은 헌혈을 증명하듯 새파란 멍으로 물들어 있다. 또 굳은 살이 배겨 바늘이 잘 들어가지 않을 정도다. 길씨는 “바늘을 많이 찔러 핏줄을 잘 찾지 못할 정도”라며 “살아오면서 가장 자랑스러운 흔적”이라고 말했다.
퇴직 후 일상이 무료하고 지겨울 법도 하지만 헌혈이 생활의 가장 큰 활력소가 되고 있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냉수를 한 잔 들이키고 집 근처인 대구 북구 함지산에 오른다. 함지산과 운암지 둘레길을 한 바퀴 도는 것은 오로지 헌혈 때문이다.
길씨는 “헌혈을 하기 위해서 매일 산을 오르며 건강관리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담배는 전혀 하지 않고, 헌혈 하기 며칠 전부터는 술도 입에 대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 대구경북혈액원에 따르면 이달 현재 대구경북 지역 총 헌혈자 수는 22만4,235명이다. 올 한해 목표치 25만8,220명에 비해 약 3만명 가량 모자란 87%의 달성률을 보이고 있다.
길씨는 “아직까지 헌혈참여가 생활화되지 않은 것 같다”며 “잠깐의 수고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헌혈에 청년들이 많이 참여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헌혈은 70세까지 참여할 수 있다. 그에게는 7년 조금 더 남았다. 길씨는 “지금도 헌혈 날짜가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삶의 일부가 됐다”며 “오늘도 9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3시면 플래시를 켜고 함지산으로 향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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