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덕분에 영화 주인공이 됐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멋스럽게 꾸미고 찍을 걸 그랬습니다. 하하.”
“아버지의 삶을 기록한다는 가벼운 생각이었는데 극장 개봉까지 하게 되니 기뻐요.”
꿈에는 은퇴가 없다. 두근두근 가슴이 뛴다면 그때가 바로 도전할 때다. 말은 쉽다. 다큐멘터리 영화 ‘몽마르트 파파’(내년 1월 9일 개봉)는 그래서 특별하다. 말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진 이야기다. 더구나 꿈을 찾아 떠난 주인공은 아버지 민형식(66)씨, 그 아버지를 따라가 영화로 찍은 이는 아들 민병우(37) 감독이다. 지난 20일 한국일보에서 부자를 만났다.
계기는 아버지의 정년 퇴임이었다. 평생 미술교사로 산 아버지에게 아들은 퇴임 뒤 계획을 물었다. “할 게 있다.” 그뿐이었다. 더 이상 말씀이 없었다. 몇 번을 졸라 받아 낸 대답은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싶다”였다. 2년 뒤 꿈은 현실이 됐다. 아버지는 거리 화가로,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찍는 감독으로, 부자가 함께 한 달간 몽마르트 언덕에 머물렀다.
‘몽마르트 화가’는 아버지의 평생 꿈이었다. 아들 도움으로 파리시청에서 몽마르트 화가 활동 허가를 받자마자 곧장 짐부터 쌌다. “몽마르트에선 붓이 미친 듯이 움직여요. 영감이 막 샘솟더라고요. 그곳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몽마르트가 낙원인 것만은 아니었다. 12월 파리엔 비가 잦아서 수시로 이젤을 접어야 했다. 관광객보다 동네 꼬마들이 더 많았다. 그림 한 점 팔아보려 했더니 하필 몽마르트 화가들 파업으로 거래가 무산됐다.
민씨의 부인 이운숙씨는 최고의 신스틸러다. 대구 출신 부부의 투박한 대화가 압권이다. “그림실력이 형편없다”고 남편을 타박하던 부인은 파리에서도 “그림 팔아 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고 구박한다. ‘낭만파’ 남편 보란 듯 ‘현실파’ 아내는 밤마다 불경을 필사하며 마음을 달랜다. 그런 어머니이기에 아들의 영화 ‘몽마르트 파파’를 본 순간 내뱉은 첫 마디 또한 “이게 되겠니?”였단다.
민 감독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단편영화 ‘도둑고양이들’(2011)로 제1회 스마트폰영화제 대상을 받았고, 장편영화 ‘그 강아지 그 고양이’(2013), 유튜브 웹영화 ‘지구인의 연애론’(2019) 등을 연출했다. 민 감독은 “‘몽마르트 파파’ 속편도 만들고 있다”면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잠시 스마트폰 영상에 담았다.
그나저나 민씨 그림은 과연 팔렸을까. “저는 그림을 팔기 위해 그리지 않습니다. 내가 좋아서 하다 보면 그걸 인정해 주는 사람이 나타나는 거죠. 고흐도 생전에 그림을 1점밖에 팔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못 팔았다는 얘기 같다.
민씨의 꿈만큼은 여전히 확고했다. “다시 몽마르트로 되돌아갈 겁니다. 르누아르처럼 붓을 잡은 채 눈 감는 게 꿈이에요.” 성과가 영 없는 것도 아니다. 내년 2월 민씨는 한국에서 인생 첫 개인전을 열기로 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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