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세 이하·좋은 예후인자 있으면 70% 완치
5년 상대생존율 40% 불과하지만 새 치료제 속속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5년 상대생존율이 40%에 불과해 여전히 ‘불치병’의 멍에를 지고 있지만 최근 치료제가 속속 나오면서 환자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 임원인 정모(52)씨는 평소 일과 결혼했다고 불릴 만큼 열정적으로 일했고 승승장구했다. 어느 날 갑자기 감기 증상이 생기더니 호흡도 곤란해지고 열이 심해져 응급실을 찾았다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다른 환자와 달리 동종조혈모세포이식술을 받고 완치됐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CML)은 표적항암제 개발 등에 힘입어 5년 상대생존율(일반인과 비교한 생존율)이 90%로 향상됐다. 하지만 정씨가 앓은 급성 골수성 백혈병(AML)의 5년 상대생존율은 40%에 그쳐 여전히 ‘불치병’이라는 멍에를 지고 있다. 그런데 최근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가 속속 등장하면서 희망을 주고 있다.

◇AML, 나이 들수록 환자 많아져

백혈병은 혈액이나 골수(骨髓·머리뼈 가슴뼈 갈비뼈 허리뼈 골반뼈 등의 중심 부분에 있는 해면체. 혈액세포가 생산되고 성숙하는 곳) 속에 종양세포(백혈병 세포)가 생기는 병이다.

병 진행 속도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암세포 종류에 따라 골수성(비림프성)과 림프성으로 구분한다. 만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전체 백혈병의 0.4~0.5%에 불과한 희귀병으로 환자 대부분이 65세 이상이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은 어린이에게 주로 나타난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백혈구가 악성세포로 바뀌어 골수에서 증식해 말초혈액으로 퍼져 나와 간·비장·림프선 등 온몸을 침범한다. 골수나 말초혈액에 골수아(亞)세포가 20% 이상이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다.

암세포가 골수에서 자라면 정상 조혈세포를 억제해 피가 만들어지는 것을 방해하므로 빈혈과 백혈구·혈소판이 줄어든다. 엄지은 한양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혈액을 골수에서 제대로 만들지 못해 무기력감, 운동 시 호흡 곤란, 어지럼증 등이 생길 수 있고, 혈소판이 줄어 코피가 자주 나고 멍이 잘 들기도 한다”고 했다. 또한 정상 백혈구가 부족해 발열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다. 반면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별다른 증상이 없어 건강검진에서 많이 발견된다.

골수성 백혈병 환자의 80%가 성인인데 그 원인은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항암치료를 받았거나 방사선 치료, 특히 골수세포가 많이 있는 골반 쪽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거나 벤젠 등 독성 물질에 노출됐을 때 걸릴 위험이 높다.

백혈병은 혈액검사로 질병을 의심할 수 있다. 일반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수치만 약간 높으면 대부분 일시적인 현상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백혈구는 감기만 걸려도 많아질 수 있고 먹는 약 때문에 수치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병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골수검사를 받아야 한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 원인의 하나가 염색체 이상이다. 나이 들면서 염색체 이상이 많아지므로 고령인에게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주로 나타난다. 장준호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30대에 10만명당 1명, 70대에는 10만명당 15명으로 고령층에 주로 나타난다”고 했다. 젊은 환자는 동종조혈모세포이식술을 시행하면 대개 완치할 수 있다. 하지만 65세가 넘으면 이식술을 시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준 항암치료법, 바뀔 가능성 높아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먹는 항암제 ‘글리벡’과 2세대 약(스프라이셀, 타시그나, 슈펙트), 3세대 약(아이클루시그)이 개발된 뒤 10년 장기 생존율이 90%가 넘을 정도로 치료가 잘된다.

반면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아직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일부 예후가 가장 좋은 환자는 3년 생존율이 50~60%이지만 예후가 나쁜 환자는 30%도 되지 않는다. 이 병 치료를 위해 지난 40여년 동안 ‘3+7 항암치료법’이라는 표준 항암치료법이 시행됐다. 3+7 항암치료법은 2가지 세포독성 항암제를 각각 3, 7일 동안 주사로 병용 투여한 뒤 치명적인 부작용을 잘 견뎌야만 1개월 뒤 환자의 70% 정도가 생명 연장을 기대했다. 전근대적이면서도 유일한 교과서적 치료법이다.

김희제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3+7 항암치료법은 고령 환자에게 치명적인 전신 합병증을 일으켜 치료 도중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다”며 “게다가 1차 양호 반응을 얻어도 수 개월이나 수 년 뒤에 재발해 사망하는 환자가 많다”고 했다.

다행히 급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생기고 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이 2017년 4종의 표적치료제를 승인하면서 전통적인 표준 치료법이 바뀔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표적치료제가 FLT3 돌연변이 유전자에 대한 표적치료제(미도스토린)이다. 717명의 급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가 참여한 3상 임상시험에서 FLT3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진 환자에게 미도스토린을 투여하면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74.7개월 대 25.6개월의 큰 차이로 생존율이 높았다.(‘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 2017년 6월호) 현재 FLT3 유전자 변이를 표적으로 하는 3종의 유사 치료제가 다양한 임상시험을 국내·외에서 진행 중이다.

또한, IDH 2 돌연변이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약제(에니시데닙, CPX-351)도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특히 CPX-351은 기존 3+7 항암치료법의 한계를 뛰어 넘는 저독성 고효율 치료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

장준호 교수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60세 이하이거나 좋은 예후인자를 가지고 있으면 완치율이 70%나 된다”며 “65세가 넘으면 완치율이 높지 않지만 표적치료제로 사용한 신약 임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생존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5년 상대생존율은 90%로 크게 좋아졌지만 급성 골수성 백혈병은 40%에 그쳐 아직 공포의 병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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