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12ㆍ16 부동산 대책’으로 고가 주택에 대한 대출이 막히면서, 이번 대책의 불똥이 전세 시장으로 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서울의 전세가격 상승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세 매물마저 더 줄어들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에게 돌아갈 거란 전망도 나온다.
◇달아 오르는 서울 전세시장
21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집값 과열을 막기 위해 지난 16일 매매와 전세 대출을 옥죄는 내용이 담긴 부동산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이번 대책으로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전셋집 공급은 더 줄고 이미 고공행진 중인 전세가격이 더 오르는 ‘전세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난 7월부터 상승세로 접어든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에 따른 ‘로또 청약’ 대기 수요와 정시 확대 등 입시제도 개편의 영향으로 갈수록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6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주 대비 0.18% 상승하며 2015년 11월 이후 4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보였다.
특히 학군 인기 지역인 강남구와 양천구는 각각 전주 대비 0.51%, 0.43% 오르며 한층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대책이 자칫 이런 전세 대란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는 셈이다. KB국민은행의 월간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전세수급 지수는 150.7로 2017년 6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이 지수가 100을 넘으면 전세 수요가 공급보다 많다는 의미다.
◇수요와 반대로 가는 전세 공급
시장에서 이번 대책이 전세불안을 부추길 것으로 보는 것은 △각종 세제에서 아파트 보유자에 대한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고 △전세자금대출 때 필요한 보증요건이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우선 1가구 1주택자의 장기보유특별공제 요건에 실거주 기간 요건이 추가된다. 이 경우 집주인들이 양도세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직접 거주할 가능성이 커진다.
또 보유주택이 9억원을 넘을 경우 전세대출 보증도 받을 수 없다. 이에 따라 본인 집은 세를 주고 전세대출을 받아 다른 집에 전세로 거주하려던 사람들이 그대로 눌러앉을 경우 전세 매물은 더욱 부족해진다. 집주인이 늘어난 보유세를 전월세 가격에 포함시키거나,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돌릴 경우 매물 부족에 더해 세입자의 부담도 더 커지게 된다.
더 큰 문제는 내년 이후 새 아파트 공급이 대폭 줄어든다는 점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올해 4만2,892가구에서 2021년 2만1,466가구로 절반 수준까지 떨어진다.
반면 강화된 대출 규제로 전세 수요는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23일부터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의 시가 9억원 초과 주택은 9억원 초과 구간에 대해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을 40%에서 20%로 강화했다. 특히 시가 15억원이 넘는 아파트는 대출 자체를 금지했다. 결국 내 집 마련을 고민하던 실수요자들이 매수를 미루고 전세로 눌러앉을 경우 전세 수요가 늘어나며 전세가격은 더욱 상승하게 된다.
임병철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교육 정책 변화와 분양가상한제로 청약 대기수요가 늘면서 겨울 비수기에도 전세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대책으로 매수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 전세시장 불안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내 집 마련 수요가 당분간 임차 시장에 머물면서 교통 여건 및 학군이 우수한 지역이나 신축 아파트 등을 중심으로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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