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절반 이상 이동시켜 ‘원내 2위 위성 정당’ 만들기 검토
고령 지지층 혼란ㆍ비례당 배신 막을 복안, 물갈이 방침과도 맞아
자유한국당이 ‘4+1’ 협의체가 추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맞불로 ‘2중대 위성 정당’인 비례한국당(가칭) 창당을 검토 중인 가운데, 현역 의원을 비례한국당에 ‘꿔 주는’ 방안까지 오르내리는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한국당 의원들을 탈당시킨 뒤 입당시켜 비례한국당을 ‘기호 2번’으로 만들겠다는 시나리오다. 공직선거법은 총선과 대선 등에서 국회의원 의석이 많은 순으로 기호를 부여한다.
이 같은 변칙의 1차 목표는‘기호 2번=한국당’에 익숙한 지지자들의 혼란을 막는 것이다. 비례한국당 후보들이 한국당을 업고 총선에서 당선된 뒤 ‘배신’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한국당 핵심 관계자는“총선에 불출마할 의원들을 비례한국당으로 대거 파견해 원내 2당 지위를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말했다.
재적 의원이 108명인 한국당은 이 같은 시나리오를 자력으로 관철시킬 수 있다. 원내 1당(더불어민주당 129석)과 원내 3당(바른미래당 28석)의 의석수 차가 크다는 점을 활용하면 된다. 한국당에서 의원 55명이 옮겨 가면 비례한국당은 총선에서‘기호 2번’을 받는다. 투표 용지에 민주당(129석), 비례한국당(55석), 한국당(53석) 순으로 자리 잡게 된다는 얘기다.
한국당은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 때의 비례대표 ‘셀프 제명’ 사례도 들여다 보고 있다. 비례대표는 자진 탈당하지 않는 한 의원직이 박탈되지 않는다. 당시 통진당 비례대표였던 서기호, 정진후 전 의원 등은 ‘셀프 제명’ 한 뒤 정의당에서 활동했다. 한국당 비례대표들이 의원직을 버리지 않아도 비례한국당으로 옮길 수 있다는 얘기다.
비례한국당 1차 파견 대상은 총선 불출마자들이다. 50석 안팎으로 쪼그라드는 ‘한국당 본점’에는 당 지도부와 내년 총선 지역구 출마가 확정된 현역 의원들이 남아 선거를 치를 수 있다. 이는 한국당 총선기획단이 최근 발표한 ‘현역 의원 50% 물갈이 방침’과도 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한국당의 치밀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현행 정당법은 이중당적 보유를 금지(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 벌금)하지만, 이 조항이 실제 처벌로 이어진 전례는 없다. 국내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워낙 잦은 탓에 중앙선거관리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당과 비례한국당 모두에 적을 두게 되는 인사들의 이중 당적 문제가 제기될 경우, 정당법의 이 같은 빈틈을 내세워 돌파하면 된다는 것이 한국당의 논리다.
다만 한국당이 이 같은 극단적 변칙을 실행에 옮길지는 미지수다. ‘우리가 이 정도까지 대비하고 있으니,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차라리 포기하라’는 엄포용에 가깝기 때문이다. 김재원 한국당 정책위의장은 라디오에 출연해 ‘비례한국당 전략’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에 “변칙을 쓰게 한 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되받았다. 한국당 관계자도 “우리가 더 원하는 건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예 도입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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