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서 지역주의는 많이 완화됐지만 대선에서 지역 구도는 여전히 위력을 떨친다.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강력한 ‘PK(부산ㆍ경남)+호남’ 지역 구도를 만든 것은 김대중(DJ) 대통령이다. 인구 구조의 열세를 ‘호남+충청도’라는 지역연합 구도로 돌파해 대통령에 오른 DJ는 예상을 깨고 PK 출신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밀었다. 측근인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등 호남 독자 세력만으로는 대통령 당선이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 문재인 대통령 당선도 DJ가 만든 ‘PK+호남’ 지역연합의 연장이랄 수 있다. 호남 유권자들의 전폭적 지지가 없었다면 문 대통령이 촛불혁명의 직접적 수혜자가 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 국무총리(이낙연)와 대통령 비서실장(임종석)이 호남 출신인 것은 ‘보은(報恩)’ 성격이 짙다. 문 대통령이 아무리 흔들려도 호남의 든든한 지지는 정권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두 번째 총리로 역시 호남 출신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지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줄곧 유지하는 이 총리의 정치 ‘홀로서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DJ 이후 대통령을 내지 못한 호남에서 이 총리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하다. 하지만 그 역시 ‘PK+호남’ 지역 구도의 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당내 세력이 약한 이 총리가 여당 후보가 되려면 ‘친문’ 진영의 도움이 필수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국 사태’ 이전 호남은 부산 출신의 조 전 법무장관을 차기 대선 후보 반열에 올렸다. 호남의 이 총리와 PK 출신 조 전 장관이 한때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1위와 3위를 달린 것은 그런 지역 구도의 영향이다.
□ 친문 진영 후보들이 줄줄이 도중하차한 상황에서 이 총리가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힘을 실어 준다 해서 당선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호남 후보가 대통령이 되려면 철학과 가치, 국민통합과 소통 능력이 DJ급은 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그래야 충청을 끌어들이고 영남에서도 표가 나온다.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과 안정적 이미지, 이념지향적이지 않은 균형감은 이 총리의 강점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뚜렷한 정치적 자산이 없다는 점이 한계다. 문 대통령은 이 총리에게 “이제 자기 정치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이낙연의 색깔’을 만들 수 있느냐에 그의 운명이 달려 있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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