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 왜 우리는 갈라서야 하나~.”
19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의 한 중식당. 번쩍대는 금색 용 문양이 새겨진 붉은색 수트를 빼입은 사내가 마이크를 잡고 ‘합정역 5번 출구’를 불렀다. 이 요란한 행사의 주인공은 MBC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통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변신한 유재석. ‘유산슬의 고향’ 중식당이 무대여서일까. 유산슬의 노래엔 기름기가 좔좔 흘렀다.
이날 기자 간담회는 22일 유산슬 1집 활동을 마무리하는 공연을 앞두고 마련된 자리였다. 최고의 진행자라던 유재석은 요즘 트로트계 신인 노릇 하느라 마이크만 잡으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노래한다. 데뷔한 지 어느덧 99일, 이제는 노래할 때 짓는 표정과 손짓에서 긴장감이 어느 정도 사라졌다. “나훈아 선배님 ‘고향역’ 공연 영상을 유튜브에서 50번 돌려봤어요. 흉내 내려 했는데 잘 안 되지만요. 하하하.”
스튜디오 진행에 익숙한 그에게 거리에서의 공연은 값진 경험이었다. 유재석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처음에 노래할 땐 당황스러웠다”라면서도 “하지만 구례 장터에서 시민들과 함께 춤을 추고 소통하며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거리로 나가 누구보다 ‘촌스럽게’ 노래하며 시민에게 격의 없이 다가가다 보니 사람들은 이제 유재석보다 유산슬을 더 찾는다. “사인도 ‘유재석’이 아니라 ‘유산슬’로 해달라는 분들이 더 많으세요.”
유산슬은 EBS 연습생인 ‘펭수’와 대중문화계를 흔든 ‘올해의 신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무한도전’ 종방으로 위기를 맞은 유재석은 유산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tvN 예능프로그램 ‘일로 만난 사이’와 ‘유키즈 온 더 블록’ 등을 진행하며 현장에서 땀도 많이 흘렸다.
그래서일까. 유재석은 올해를 “도전으로 의미 있던 해”라 정리했다. ‘유행을 만들진 못해도 따라가지는 말자’라는 게 방송인으로서의 신조인데 거기에 나름대로 부합한 한 해였던 셈이다.
유재석은 지금도 늘 초심을 생각한다. 1991년 KBS ‘대학개그제’에서 장려상을 받아 데뷔하는 그는 9년간 무명생활을 했다. “지칠 때면 옛날에 일 없을 때를 생각해요. 그 때 ‘기회를 한번만 달라, 나중에 불평하면 큰 벌 주셔도 된다’고 마음 속으로 빌고 빌었어요. 그 다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해요.”
분위기가 너무 진지해졌던가. 다시 일어선 유재석, 아니 유산슬은 ‘사랑의 재개발’을 부르며 유유히 행사장을 떠났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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