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총리 ‘의회 정회’ 조치 뒤집어 주목
브렌다 헤일(74) 영국 대법원장이 18일(현지시간) 퇴임했다. 그는 퇴임 일성으로 남성 중심인 영국 법조계의 관행을 타파할 것을 주문했다.
BBC방송 등에 따르면 법조계에 몸 담은 이래 헤일에게는 최초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그는 최초의 여성이자 공립학교 출신 대법원장이었다. 대법원 설립 이전 대법관 역할을 하던 상원 법관의원과 대법관에 임명된 첫 여성이기도 했다.
그는 9월 보리스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 조치를 무효화하면서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존슨 총리는 10월 말로 예정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를 앞두고 의회가 자신의 ‘노 딜’ 불사 전략을 막지 못하도록 정회를 결정했다. 그러나 야당 등이 중심이 돼 소송을 제기하자 헤일이 이끄는 대법원은 존슨의 정회 결정이 위법이라고 결론 내렸다. 결국 존슨은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EU에 요청해야 했다.
특히 헤일이 의회 정회 결정이 불법임을 선고하는 순간, 그의 오른쪽 어깨 부분에 달려 있던 크고 화려한 거미 모양 브로치가 화제를 모았다. 헤일의 단호한 결단에 빗대 “총리를 잡는 독거미”라는 평가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퍼졌다. 헤일은 평소 곤충 모양의 브로치를 즐겨 착용해 왔다.
이날 퇴임식에는 큰 날개를 가진 딱정벌레 브로치를 달고 나왔다. 행사에 참여한 여러 여성 변호사들도 그에 대한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거미 브로치를 착용했다. 헤일의 후임으로 임명된 로버트 리드 대법관은 의회 정회 불법 판결이 “대법원장으로서 그가 이룬 최대 성취”라고 표현했다.
헤일은 퇴임 고별사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강조했다. 그는 “때때로 잘 알아맞히고, 그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지만 우리는 서로(법관)의 정치적 견해를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 세계 제2차 대전 이후 이 나라에서 법관들은 정치적 이유로 임명되지 않았다”며 “대법원 권한이나 임명 절차가 미국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주문했다.
그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는 법조계 관행을 향한 비판도 빠뜨리지 않았다. 헤일은 “여전히 정형화된 (성별) 고정관념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우리가 이 건물(대법원)로 이사 왔을 때 다른 이들은 재원 마련, 직원 채용, 보안 등을 책임졌는데 왜 나는 미술과 인테리어를 담당했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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