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막았던 15억원 이상 아파트에 갭투자 허용했다 하루 만에 번복
분양가상한제 서울 전역 확대는 불로소득 막겠다던 대책과 모순
주택 가격만으로 규제 기준 정해 10억 매물 14억까지 뻥튀기 우려도
정부가 ‘역대 최강’ 규제로 평가되는 12ㆍ16 부동산 대책을 전격 발표하며 시장과의 전면전을 선포했지만, 벌써부터 곳곳에 빈틈이 노출되고 있다.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라도 전세금 반환용 대출은 허용하기로 했다가 대책 발표 하루 만에 이를 뒤집는가 하면 “주택 불로소득은 절대 안 된다”면서도 ‘로또 청약’ 열기를 부르는 분양가상한제는 사실상 서울 전역으로 확대하는 자기모순 정책을 내놨다.
18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6일 “대출이 금지된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라도 전세금 반환 목적 대출은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는 하루 만에 이를 번복해 금지하기로 했다. 전세 끼고 집을 산 뒤 나중에 전세금 반환용 대출을 받으면 15억원 넘는 고가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점이 규제의 사각지대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치밀한 사전 검토가 부족했다는 방증이다.
이밖에도 정부 대책의 허술함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 크게 늘고 있는 ‘P2P(업체가 낀 개인 간 거래) 담보 대출’은 이번 금융 규제에서 빠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105개 P2P 업체의 누적 대출액 6조2,000억원 가운데 부동산대출 비중은 66%에 달했다. 이자율이 연 10%에 가깝지만 담보인정비율(LTV)은 은행권 최고 한도(40%)의 두 배가 넘는 85%도 가능해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P2P 이용이 급증하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확대 역시 뒷말이 무성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6일 부동산대책 발표 배경을 설명하면서 “주택을 통한 불로소득은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고분양가 기준을 통해 분양 가격을 통제하면서 이미 분양시장은 ‘로또’처럼 변했다. 당첨만 되면 인근 시세 대비 수 억원의 불로소득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사실상 서울 전역을 분양가상한제 지역으로 묶으면서 앞으로 불로소득 사례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모순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분양가상한제 지역의 분양가를 주변 시세 대비 30~40% 가량 저렴하게 허용하겠다고 밝혀 왔다.
금융 관련 규제를 하면서 9억원과 15억원 같은 주택 가격으로만 기준을 정하다 보니 ‘풍선 효과’도 우려된다. 당장 15억원 초과 주택은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돼 투자자들이 9억~15억원 사이 주택으로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문가들은 10억원대 초반 주택들이 ‘키 맞추기’에 나서 14억원대까지 가격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번 대책에서 특히 주목을 끈 건, 다주택자에 대한 한시적 양도세 인하 조치다. 정부는 내년 6월 말까지 다주택자가 조정대상지역에서 10년 이상 보유한 집을 파는 경우 양도소득세를 무겁게 물리지 않기로 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17차례 부동산 대책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화책으로, 다주택자의 주택 매도를 위한 정부 나름의 출구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 다주택자가 이미 임대사업자 등록 등으로 세금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찾았기 때문에 정부 의도와 달리 매물이 많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12ㆍ16 대책에 대해 “정부가 잘못된 진단에 알맹이 빠진 대책을 내놓았다”며 “오히려 내년 총선까지 현재의 상승세를 유지하겠다는 신호로도 의심된다”고 혹평했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