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나주시 로컬푸드 직매장이 손님들로 붐비고 있다. 나주시 로컬푸드 통합지원센터 제공

“돈도 돈이지만, 아주 재미가 있어. 기자 양반도 여기 와서 농사 한 번 지어보세요.”

전남 나주시에서 채소 농사를 짓는 이영자(69)씨는 최근 ‘문자 받는 재미’에 푹 빠졌다. 매일 아침 나주시 로컬푸드 직매장에서 나온 트럭에 시금치, 상추 등을 한가득 실어 보내면 식품 바코드가 찍힐 때마다 ‘OO이 판매됐다’는 메시지가 수시로 도착하기 때문이다. 과거 과수원을 운영했을 때는 자신이 재배한 과일이 어디로 가서 얼마나 팔렸는지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본인 생산품의 판매 상황이 곧바로 체감된다. ‘나주시 반남면 석천리 OO길 이영자’라는 이름과 휴대폰 번호가 적힌 포장지는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소득도 쏠쏠하다. 이씨가 생산한 채소는 그가 직접 적은 가격에 매장에서 판매된다. 이 가격에서 일부 수수료를 뺀 금액이 10일마다 정기적으로 입금된다. 이씨는 “많을 때는 하루에 10만원씩 들어오고, 쉬엄쉬엄 할 때는 그보다 적게 입금된다”면서 “대규모 과수원을 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중노동이 힘든 나이를 생각하면 매우 만족한다”고 했다.

역시 나주시에 거주하는 가정주부 이준심(52)씨는 이틀에 한 번 꼴로 가까운 로컬푸드 직매장을 방문한다. 채소, 과일, 육류에 각종 반찬과 빵에 이르기까지 대형마트 못지 않은 다양한 먹거리가 구비돼 있을 뿐 아니라 생산자를 알 수 있어 더 신뢰하고 살 수 있어서다. 이씨는 “포장지를 보면 생산자 이름은 물론, 생산 지역이 구체적으로 표기돼 있다”며 “어떤 과일 포장지엔 생산자 얼굴 사진까지 붙어있다”고 말했다. 문자 그대로 ‘얼굴 있는 먹거리’인 셈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로컬푸드 거래가 활성화하고 있다. 지자체와 정부가 전국 곳곳에서 로컬푸드 소비체계를 뿌리내리기 위한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다. 로컬푸드 소비체계란 하나의 지역단위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그 지역 내에서 우선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공급-소비 시스템을 말한다.

 ◇먹거리 신뢰성 확보에 농가 소득 보장까지 

스마트폰 터치 한 번이면 전국의 먹거리를 구입할 수 있는 시대에 로컬푸드가 각광받는 건 대형화, 산업화된 농업의 한계 탓이다. 현재 도매시장, 대형마트 등에 집중된 국내 농산물 유통체계에서는 농산물을 누가 키웠는지 알기 어렵고, 수많은 유통단계를 거쳐야 하는 터라 수확에서 소비까지 평균 3~6일이 소요된다. 유통경로가 길어질수록 유통비용이 증가하는 현상도 발생한다.

반대로 로컬푸드는 생산자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유통단계가 최소화돼 생산에서 소비까지 0.5~1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농민에게 돌아가는 몫이 커지며 안정적인 농가 소득을 기대할 수 있다. 예컨대 이영자씨가 로컬푸드 직매장에 지불하는 수수료는 판매가격의 12%이며, 직매장이 운영하는 트럭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농산물을 옮기는 농가는 판매가격의 90%까지 받을 수 있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다단계 유통과정을 거치는 일반 농산물의 농가 수취율은 55.6%에 불과하다.

지역경제도 살아난다. 동국대가 로컬푸드 소비체계가 뿌리내린 지역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로컬푸드 직매장의 지역승수효과는 2.52로 대형마트(1.08)보다 2배 이상 컸다. 로컬푸드를 이용하면 해당 지역 내 소득이 유발되고 돈이 더 많이 유통되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전남 나주시에 위치한 공공기관에서 로컬푸드로 만든 급식을 제공하고 있다. 나주시 로컬푸드 통합지원센터 제공
 ◇완주서 시작… “혁신도시 10곳으로 확대” 

국내에서 로컬푸드가 처음 추진된 곳은 전북 완주군이었다. 완주군은 2008년 전면적인 로컬푸드 실현을 내세우며 가족소농과 및 고령농을 중심으로 생산-소비 시스템을 조성하는 데 주력했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2년 용진농협 로컬푸드 직매장이 개장한 뒤 지금까지 완주군에서만 직매장이 12곳으로 늘었고, 학교 급식에도 로컬푸드가 제공되고 있다. 2017년 기준 완주군 로컬푸드 매출은 586억원에 달하고, 관련 일자리는 3,000여개가 창출됐다.

정부도 2013년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및 효율화 방안 중 하나로 로컬푸드 활성화에 뛰어들었다. 특히 공공기관 급식에 로컬푸드를 공급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공공기관 구내식당만 해도 상당한 규모의 식사 인원과 농산물 수요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식품부는 우선 공공기관 16곳이 몰려있는 혁신도시 나주시를 선도모델로 선정해 육성한 뒤, 로컬푸드 공급을 전체 혁신도시 10곳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홍형석 나주시 로컬푸드 통합지원센터장은 “나주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학교 급식을 대상으로 로컬푸드 사업을 해왔고, 농업 관련 공공기관이 많은 곳”이라며 “공공기관 급식에 로컬푸드를 공급할 뿐 아니라 직매장과 소규모 농가를 위한 가공센터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컬푸드 직매장 5년 새 7배… 소비자 80% “만족” 

효과는 확실하다. 전국 로컬푸드 직매장은 2013년 32곳에서 지난해 229곳으로 크게 팽창했다. 직매장 1곳당 평균 매출은 지난해 19억원에 달해 5년 전 9억9,000만원에서 2배 이상 늘었다.

나주시의 경우 지난해 8월 기준 359곳에 불과했던 출하농가가 올해 10월 479곳으로 늘었다. 이중 공공기관에 농산물을 납품하는 농가는 9곳에서 40곳으로 1년 새 4배 이상 뛰었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농가의 총매출액은 종전 월 454만원에서 지난달 6,352만원으로 증가했고, 공급 품목은 16개에서 328개로 다양화됐다.

소비자 만족도도 높다. 지난 10월 한국여성소비자연합 전북지회 소비자정보센터가 올해 4~9월 전북도내 37개 로컬푸드 직매장을 방문한 소비자 6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80% 이상이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소비자들은 농식품의 다양성, 크기와 모양, 표시사항, 가격, 신선도, 안전한 농식품 등 항목에 대해 5점 만점에 4.0점을 부여했다. 특히 신선도에서 4.3점이 나왔고, 표시사항 만족은 4.2점, 안전성은 4.1점이었다.

정부는 앞으로도 로컬푸드 시스템 확산을 꾸준히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2022년까지 혁신도시 소재 공공기관 급식 로컬푸드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며 “학교와 사회복지시설에도 로컬푸드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공동기획: 농림축산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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