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로서는 올해의 마지막 칼럼을 쓰면서 이 마지막 칼럼에 뭣을 쓸까 생각을 하였습니다. 국회에 이상한 사람들이 난입한 유쾌하지 않은 얘기, 아니 불쾌한 얘기를 쓸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어떤 칼럼보다 소중한 이 마지막 칼럼을 그런 불쾌한 얘기에 할애하고 싶지 않았고, 따듯한 느낌의 얘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따듯한 얘기가 뭣일까 또 생각해 보니 한 해 동안 받은 은혜들을 떠올리며 감사의 정을 나누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아마 지난해에 이미 했을 것 같아 올해는 ‘보내고 맞이하며’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세월은 가고, 인생도 가지요. 우리말은 이 세월과 인생의 감에 대해-아마 다른 나라 말들에는 없는- 독특한 표현을 합니다. 다름 아닌 ‘살아간다’ 또는 ‘죽어 간다’는 표현이지요. 그저 ‘산다’ 또는 ‘죽는다’ 하지 않고 우리말은 살면서 가고, 그래서 점점 죽어 간다고 하는 겁니다. 이는 마치 배를 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배에서 먹고, 자고, 고기 잡으며 살아가는데 그러는 중에도 배는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가는 것에는 ‘떠나가는 것’과 ‘지나가는 것’과 ‘향해 가는 것’이 있지요. 출발하는 곳과 경과하는 곳과 도착하는 곳이 있다는 것인데 우리의 세월과 인생은 어디를 향해 가고, 지금까지 어디어디를 지나왔으며 지금은 어느 지점을 지나가고 있을까요? 그에 앞서 우리의 시간 인식과 세월 인식은 지나온 것과 다가오는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요? 어떤 사람은 지나온 것은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고, 어떤 사람은 지나온 것에 발목이 잡혀 앞을 보지 못하기도 하는데 우리의 세월인식은 뒤도 돌아보고 앞도 내다보며 가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제가 가끔 고속열차를 탈 때 좌석이 순방향이 아닌 역방향의 자리에 앉게 될 때가 있는데, 사람들은 대부분 역방향을 싫어하지만 저는 개의치 않을 뿐 아니라 어떤 묘미 같은 것이 있습니다. 순방향으로 앉을 때는 다가오는 것을 보지만 어느새 지나쳐 가기에 나에게 왔던 것들이 금세 사라져 버리지요. 그런데 역방향으로 앉으면 지나간 것이 금세 사라지지 않고 오래 시야에 담을 수 있고 그래서 풍경이 비교적 오래 남아 있지요. 그리고 그것은 이런 느낌을 갖게도 합니다. 연인과 만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이제 헤어져야 하는데 당연히 그냥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잡은 손을 놔야 하는데 놓을 수가 없어 마지못해 놓고, 천천히 놓습니다. 그리고 바로 돌아서지 못하고 뒷걸음질 쳐서 가고 천천히 갑니다. 가면서 손을 흔들어 몸은 떨어지고 멀어져 가도 감정의 끈은 여전히 연결상태를 유지합니다. 이렇게 해서 지나가는 것이 지나치는 것이 되지 않게 되고, 잊혀지지 않게 하고, 그가 최대한 오래 내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고속열차를 타면 역방향으로 앉아도 그 빠른 속도 때문에 오래 남게 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풍경들이 빨리 사라집니다. 우리 인생도 너무 빨리 앞만 보고 나아가면 세월이 빨리 가고, 세월과 함께 지나간 것들은 내 안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인생을 너무 급하게 살지 말 것이고, 올 한 해도 금세 잊혀지지 않게 사랑으로 돌아보고 또 감사하며 돌아보고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한 해를 이렇게 보낸다면 다가오는 새해도 잘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에 대한 따듯한 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새해도 올해처럼 망칠 거라 생각지 않고 올해처럼 삶을 사랑하고 서로 감사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희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월의 단절을 살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랑데부(redezvous)인 오늘을 사는 것이며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을 조화롭게 사는 것일 겁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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