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선택하려는 ‘새로운 길’(사실상 ‘과거의 길’)은 핵미사일 강국 건설로 가닥이 잡혀 가는 모양새다. 찰스 브라운 미국 태평양공군사령관은 17일 북한이 거론한 ‘성탄절 선물’이 장거리미사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한해 동안 역대 가장 많은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대구경조종방사포, 초대형 방사포까지 포함하면 13차례에 걸쳐 무려 27발을 쐈다. 북미 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인 2016년과 2017년 사이에 각각 쏘았던 24발과 21발보다 많다. 얼마 전에는 동창리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두 번째 ‘중대한 시험’을 마쳤다. 이전보다 한층 강화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보여 줄 태세다. 이미 새로운 기술을 적용한 신형 미사일들을 선보였다. 북한이 공개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이 발사 횟수에 비해 성공률이 이례적으로 높다는 평가도 나온다. 거의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완성한 듯하고, 실전배치를 준비하고 있는 듯하다. 대미 비핵화 협상국면을 접고, 핵군사강국으로 거침없이 돌진하려는 의도와 의지가 읽힌다.
하노이 회담 때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통해 70년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제재완화를 이끌어내 경제강국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사실상 새로운 길’을 가고자 했다. 북한은 2013년에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제시하면서 핵보유를 통해 무한한 군비경쟁에 종지부를 찍고, 그 기술과 재원으로 인민생활 향상에 복무하는 ‘경제건설’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새로운 병진노선의 참다운 우월성은 국방비를 추가적으로 늘리지 않고도 전쟁억제력과 방위력의 효과를 결정적으로 높임으로써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에 힘을 집중할 수 있게 한다는 데 있다”(2013년 3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핵무력을 보유한 만큼 앞으로는 재래식 무기 증강 등에 소요되는 국가적 자원을 축소하고 경제발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2018년 4월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했다. 당시 북한은 4ㆍ27 판문점 정상회담과 6ㆍ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었다. 대미, 대남 적대관계 종식을 배경으로 경제건설에 집중하고자 한 의도가 강화되었다. 북한에 핵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따른 체제방어적 군사무기이기도 하지만, 핵기술의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과학기술의 영역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핵무력 강화는 원자력공업에 의거해 부족한 전력문제도 풀어 나갈 수 있게 하며, 국방비를 늘리지 않고도 적은 비용으로 방위력을 강화하고 경제건설과 인민생활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제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1년 반을 보내면서 더는 신뢰할 수 없는 미국과의 평화공존은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라고 판단한 듯하다. 결국 군사측면에서는 제재에 맞서 핵보유국이라는 전략적 지위를 공고히 하고, 경제측면에서는 과학기술이 선도적 역할을 하는 자력갱생 경제발전 전략으로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고자 한다. 국가 핵미사일무력을 증강하는 것만이 미국과의 대결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판단을 굳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길은 북한에 가시밭길이다. 고립과 제재는 더 강화될 것이고, 국제사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신뢰도는 갈수록 추락할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경제발전과 생활향상을 기대했던 북한내 엘리트집단과 주민들도 가중되는 고통으로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커질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외화수입이 줄어들면서 심각한 재정난에 봉착할 수 있다. 대외무역 비중의 95%를 넘는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 심화될 게 뻔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가시밭길이 아닌 사실상의 새로운 길을 선택하기를 기대하기에는 너무 늦은 걸까.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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