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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겠네.”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임기 연장 문제로 속 끓을 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여럿 봤다. 걱정보단 조롱의 말이었다. 그의 눈물은 기사로도 나왔다. 임기 연장에 실패하고 원내대표실 직원들과 고별 오찬을 하면서 “눈물을 쏟은 것으로 알려졌고, 감정이 북받친 것으로 전해졌다”는 보도였다. 나 전 원내대표는 눈물이 많은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 흘린 눈물까지 ‘알려지고, 전해져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청와대가 얼마 전 김기현 전 울산시장 하명 수사 의혹을 반박했다. 고민정 대변인이 스피커로 나섰다. 그의 말은 명쾌하지 않았다. 의혹을 스스로 보태기도 했다. 난처하겠다 싶었다. 그날 밤 어느 기자가 “고 대변인이 조만간 울 거라는 데 한 표 던진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항의를 받고 지웠다. 고 대변인의 성별이 달랐다면 없었을 일이다. ‘충분히 명쾌하지 않았던’ 과거 청와대 남성 대변인들은 그런 야유를 듣지 않았다.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는 준비된 지도자였다. 20대에 정치를 시작해 하원 의원, 재무부 장관, 보수당 대표를 거쳐 2016년 총리에 취임했다. 마거릿 대처 이후 26년 만의 여성 영국 총리여서 ‘철의 여인 후계자’로 불렸지만, 브렉시트 소용돌이를 돌파하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올해 5월 총리 사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눈물을 보였다. 정치 인생을 치욕스럽게 마감하게 된 ‘메이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세계 언론들은 ‘여인의 눈물’이라 불렀다.

누구나 운다. 태어날 때 크게 한 번 울고, 슬퍼서, 기뻐서, 억울해서, 감격해서, 화가 나서, 흥겨워서 운다. 여성 지도자가 우는 이유는 하나로 강제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나약해서.’ 여성은 남성보다 빈번하게 울고, 우는 사람은 나약하므로, 여성은 지도자 자격이 없다는 해묵은 논리가 여전히 위력을 떨친다.

지도자는 강인해야 한다. 그러나 강인한 지도자는 울지 않는다는 것도, 우는 지도자는 강인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수상, 나폴레옹 황제도 울었다. 울음을 참는 능력과 업무 능력 사이엔 입증된 상관 관계가 없다. ‘여자는 안 된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눈물로써 자기 확신을 얻고 싶은 것뿐이다.

남성 지도자의 눈물은 좀처럼 매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남성의 눈물은 때로 용서의 구실이 된다. “그 사람 참 인간적이야.” 때로는 상찬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나이가 드니까 눈물이 많아져. 드라마 보면서 자꾸 운다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 리더십을 증명했다고 자신하는 남성들은 눈물을 당당하게 고백한다. 울 권리조차 평등하지 않은 현실 앞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지도자가 가장 열심히 참아야 하는 건 과도한 물욕, 그릇된 성욕, 무리한 권력욕 같은 폭력적 탐욕이다. 눈물이 아니다. ‘절대 울지 않지만 비합리적인 관리자’와 ‘가끔 울지만 합리적인 관리자’ 중 누가 조직에 더 큰 해악을 끼치는가를 따져 보면 분명해진다.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후자와 일하겠다.

이달 초 정치부장이 됐다. “잘해, 울지 말고.” 그렇게 말해 준 사람이 여럿 있었다. 남성인 부장들도 같은 말을 들을까 싶었지만, 넘치는 애정의 말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장을 하는 동안 울 일이 없으면 좋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울게 되더라도, 울었다는 사실을 창피해하지 않겠다. 중요한 건 부원들을 울리지 않는 것, 내가 내보내는 기사 때문에 누군가 억울한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눈물 몇 방울로 누군가의 능력을 통째로 재단하는 건 부당하다. 박준 시인의 베스트셀러 산문집 제목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게 정상이다.

최문선 정치부장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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