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권리연합회 “6월 민주상 받았지만… 열악한 노동현실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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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권리연합회 “6월 민주상 받았지만… 열악한 노동현실 그대로”

입력
2019.12.17 19:00
수정
2019.12.1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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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김군’ 사망 후 출범

특성화고 학생 100명 심층 인터뷰

21대 총선 때 대책 요구 계획도

1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이상현 특성화고등학교 권리연합회 이사장. 박지윤 기자

2016년 5월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모(당시 19)군이 사망했을 당시, 그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승강장엔 유독 교복 차림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대부분 세상을 떠난 김군과 같은 특성화고 출신의 학생들이었다. 김군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15년 말부터 은성PSD에서 현장실습을 시작해 그대로 이 회사에 입사했다. ‘죽음의 일터’로 내몰렸던 김군이 그의 후배들에겐 자신과 다르지 않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사고 현장엔 이런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나부꼈다. ‘이것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다’ ‘너는 나다’.

김군의 죽음이 그저 우연한 불행에서 빚어진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은 고 이민호군, 고 김용균씨 등 특성화고 출신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이 줄줄이 이어지며 명백해졌다. 더 이상은 위험한 일터에 누군가의 목숨을 바칠 수 없다는 결의로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음은 나의 친구가, 바로 그 다음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절박함으로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를 만들었다. 광화문에서, 국회에서, 학교 현장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쉴새 없이 외치기를 2년. 비록 그들의 바람대로 세상이 충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그 공로는 인정 받았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수상하는 제2회 ‘6월 민주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구의역 김군이나 제주에서 현장실습 도중에 숨진 이민호군 외에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죽음들이 많아요. 2017년 3월엔 전주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홍모 양이 업무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끊기도 했죠.” 17일 오전 시상식에 앞서 미리 만난 이상현 특성화고등학교 권리연합회 이사장은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특성화고 학생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현실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민호군의 사망 이후 교육부는 ‘채용연계형 현장실습’을 폐지하고 실습기간을 3개월로 줄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지만, 언발에 오줌누기식 대안에 지나지 않았다. “위험천만한 일터 현실은 거의 바뀌지 않았고, 그런 일터로 내몰리는 ‘시기’만이 늦춰질 뿐이었죠.”

지난 2017년 11월 특성화고등학생 권리연합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여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이민호 군을 추모하기 위해 국화꽃을 들고 있다. 특성화고등학생 권리 연합회 제공

현장실습이 대폭 축소되면서 피해를 본 것은 오히려 학생들이었다. 학교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취업처가 급격히 줄면서, 당장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의 취업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안전 수칙이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는 업체를 강력하게 처벌하라는 것이었지, 현장실습 자체를 없애버리라는 건 아니었거든요. 당장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겐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죠.”

이렇게 잊혀진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권리연합회가 나섰다. 실습 안전 보장과 양질의 취업처 확보 등의 내용을 담은 ‘6대 요구안’을 발표했고, 특성화고 학생들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아이캔스피크’ 운동을 전국적으로 실시했다. “이런 지속적인 요구를 받아들여 실습기간이 다시 6개월로 늘어나고, 학교에 취업지원관이나 노무사를 배치하는 등의 보완 방안이 발표됐어요.” 지난 7월에는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와 같은 기본적인 보호장구도 없이 납땜 실습을 하는 특성화고의 실습현장 현실을 고발해 교육부가 전수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모두 이들이 지치지 않고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온 결과다.

현재 권리연합회 측은 청소년 노동현장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의 특성화고 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고라는 것은 절대 예고 없이 일어나지 않거든요. 저희가 이민호군 사망 당시 제주에 내려가 진상 조사를 했을 때도, 이군이 사망한 바로 그곳에서 앞서 두 번의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또 다시 누군가를 잃기 전에 현실을 자각하지 말아야겠다 싶었죠.” 내년 초까지 진행되는 이 조사를 통해, 이들은 돌아오는 21대 국회의원총선거 정국에서 관련 대책을 요구할 예정이다.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제2회 6월 민주상’ 시상식에는 이상현 이사장이 전국 4,000여명 학생회원을 대표해 참석했다. 이 밖에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6월 민주상 본상에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를, 특별상에는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실종자, 유가족 모임’을 선정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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