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작가의 후기작들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내년 2월 16일까지 부산 중동 조현화랑 달맞이관과 해운대관에서 열리는 박서보 개인전이다.
화업 70주년을 맞은 박서보의 묘법 시리즈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연필로 캔버스 표면에 반복적으로 선을 긋던 전기, 한지를 처음 도입해 불연속적 선을 보여준 중기, 그리고 엄격한 직선 구도의 후기다. “변해도 추락하고 변하지 않아도 추락한다”는 작가의 어록을 반영하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치열한 변천사였다.
후기의 특징은 철저한 사전 드로잉 작업이었다. 지그재그의 복잡한 패턴으로 선을 긋던 중기에서 직선 구도의 후기로 넘어가면서 이런 경향은 더 강화됐다. 손으로 그린다는 느낌을 지우기 위해 막대기나 자 같은 도구를 활용해 사선으로 밀어내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런 작업을 위해선 미리 선의 길이, 형태 등을 엄격하게 구상해둬야 한다. 그래서 완성작과 더불어, 작품 구상 단계에서 초벌로 그린 그림(에스키스)들도 함께 전시해뒀다. 에스키스를 보면 그림이라기보다 설계도면에 더 가깝다.
초창기 손으로 직접 선을 그렸던 작가는 후기로 갈수록 도구를 사용했다. 선들은 오차 없는 수직, 그 자체가 됐다. 선 자체에 실리는 힘이 달라지니 그어진 선의 깊이가 더 깊어졌다. 사람의 손길을 배제하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게 된 수직 구도는 조형적으로 완성의 경지에 이른다.
박서보는 후기작에서도 변화를 추구했다. 19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검은색과 흰색으로 절제된 단일 색조가 돋보인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작가는 색채를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색이 곱게 물든 단풍에서 힌트를 얻었다. 자연의 색채를 캔버스에 끌어들이기 위해 물감을 직접 배합해가며 색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물이 색채 묘법 작품들이다.
조현화랑은 기존에 있던 달맞이관에 이어 최근 해운대관을 새로 열었다. 달맞이관에서는 단일 색조의 작품들을, 해운대관에서는 색채 묘법 작품들을 전시했다.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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