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 살인사건 수사 발표]
‘30년 실종 처리’ 8세 초등생 줄넘기 줄로 묶인 뼈 찾고도 숨겨
경찰과 야산 수색한 주민 진술… 강압수사 등 은폐 목적 가능성
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이춘재 고교졸업 사진(왼쪽)과 그의 몽타주.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찰이 이춘재(56)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실종 초등학생’ 사건 당시 피해자 유골 등 범죄 단서를 확보하고도 덮은 정황이 드러났다. 이 같은 충격적인 의혹이 사실이라면 부모의 속은 타들어가는데 국가기관이 강력사건으로 전환될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한 것이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당시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 검거에 부담을 느낀 것인지, 강압수사나 부실수사의 전모를 덮기 위해서인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17일 3개월에 걸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 사항을 발표했다.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수사본부는 이날 ‘초등생 실종’ 사건 수사 당시 형사계장이었던 A씨와 형사 1명을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A씨 등은 수사과정에서 결정적인 범죄 단서인 김양의 유골 일부를 발견하고도 은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발견한 유골을 다시 인근 땅에 묻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이 사건은 1989년 7월 7일 초등학생이던 김모(당시 8세)양이 화성군 태안읍에서 하굣길에 실종된 사건이다. 30년 넘게 실종사건으로 분류됐다가 지난 10월 이춘재가 자신이 “김 양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했다”고 자백하면서 경찰이 재수사에 들어갔다.

당시 경찰이 사건을 은닉한 정황은 이번에 주민들 진술을 통해 확인됐다. 수사본부는 한 지역 주민으로부터 “1989년 초겨울 A씨와 야산 수색 중 줄넘기 줄에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유골은 사건 발생 5개월이 지나 부패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당시 마을 주민들이 김양의 옷가지 등 유류품을 발견한 지점을 수색하면서 유골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지난달 1일 화성 태안읍에서 이춘재(56)가 살해한 것으로 확인된 '실종 초등생'의 유골을 수색하고 있다.연합뉴스

발견 당시 유골 상태는 “김 양의 양 손목을 줄넘기로 결박했다”는 이춘재의 자백 내용과도 같다.

A씨는 유골 존재에 대해 유족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경찰은 그해 12월 21~25일 김양의 아버지와 사촌언니를 불러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면서 줄넘기에 대해 질문한 사실은 확인됐다. 하지만 유골은 물론 치마와 옷가지, 책가방 등 유류품을 유족들에게 숨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런 점으로 미뤄 A씨 혐의가 상당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범행 동기는 오리무중이다. A씨 등이 자신을 향한 혐의에 대해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어서다. 경찰도 이 부분에 대해 “추정으로 말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당시 형사들이 초등생 실종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해야 할 만한 불가피한 전후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또 은닉 의혹이 사실일 경우를 전제로 “앞서 발생한 이춘재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엉뚱한 윤모씨를 검거해 공적을 나눠 가졌던 때라, 추가로 살인사건이 발생하면 강압수사 등 그 과오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숨기려 했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진범 검거에 부담을 느껴 단순 실종사건으로 분류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8차 사건은 초등생 실종사건 10개월 전쯤인 1988년 9월 16일 같은 경기 화성에서 발생했다. 박모(당시 13세)양이 집에서 성폭행당하고 숨진 사건으로, 이춘재의 자백으로 당시 진범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52)씨에 대한 경찰의 고문 등 불법행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찰은 A씨 등을 입건은 했지만, 모두 공소시효가 소멸돼 형사처벌까지는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유골을 은닉한 의도 등 추가 조사를 통해 당시 경찰 수사 전반에 대한 진상을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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