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원년 트로피인 쥘리메(Jules Rimet) 컵이 1983년 12월 19일 도난당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브라질축구연맹 캐비닛 전면은 방탄 유리였지만 어이없게도 뒷면은 쇠지렛대만으로도 뜯을 수 있는 나무 재질이었다.
프랑스 조각가 아벨 라플뢰르(Abel LaFleur)가 디자인한 쥘리메 컵은 그리스 신화 속 승리의 여신 니케가 8각형의 성찬배를 받쳐든 형상으로, 35cm 높이에 무게 3.8kg의 황금과 청금석 기단으로 만들어졌다. 형상 때문에 원년 명칭은 ‘빅토리 트로피’였으나, 1929년 월드컵을 창설한 FIFA 3대 회장 쥘 리메(1873~1956)의 업적을 기려 1946년 공식적으로 쥘리메컵으로 명명됐다.
브라질 경찰 당국은 사건 직후 용의자 3명을 체포, 그들로부터 후안 카를로스 에르난데스라는 이름의 금 유통업자에게 쥘리메컵을 넘겼고, 이미 골드바로 녹였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훗날 금고털이범 한 명이 자신도 주범으로부터 범행 제의를 받았지만, 브라질 월드컵 우승 경기를 보다가 심장마비로 숨진 형을 생각해서, 애국심에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사실까지 있어, 그들이 쥘리메컵을 훔친 건 확실하다고 보는 이들이 다수다. 하지만 에르난데스의 주조시설에서 트로피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고, 그들의 진술 외에 에르난데스의 범행 혐의를 입증할 길은 없었다. 에르난데스는 1998년 마약 거래 혐의로 구속돼 2005년 풀려났지만, 쥘리메컵 관련 혐의로 처벌받지는 않았다. 트로피 자체 값어치가 훨씬 높고, 순금이 아니어서 그냥 녹여 골드바로 만들었다는 진술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누군가가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38년 우승국 이탈리아의 FIFA 부회장 오토리노 바라시(Ottorino Barassi)가 2차대전 전쟁 통에 로마의 한 은행에 보관 중이던 쥘리메컵을 은밀히 찾아와 신발 상자에 넣어 자신의 침대 아래에 숨겨 지켜낸 일화가 있고, 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석 달 전 런던 웨스터민스터 중앙홀 전시 도중 도난당했다가 1주일 뒤 런던 남부 어퍼 노르우드(Upper Norwood)의 한 정원에서 피클스(Pickles)라는 강아지에 의해 신문지에 싸인 채 발견된 적도 있었다.
불가사의하게도, 2015년 1월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 건물 지하실에서 쥘리메컵의 기단부만 일부 발견됐다. 쥘리메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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