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987년 광명 개발 때 하안동 땅 분양권 주며 “전매 땐 처벌”
투기꾼 몰려 대다수 웃돈 받고 전매, 상가 대기업에 팔려 아웃렛 영업
LH “전매 제한 없었다”고 말 바꿔… 국토부도 광명시도 나 몰라라
지난 12일 오후 경기 광명시 하안동에 3명의 옛 상인이 모였다. 노년에 접어든 이들에게 일생의 한(恨)으로 남아 있는 하안동 38번지. 현재는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아울렛이 영업 중이다. 이들은 그 땅의 공동명의자이다. 땅에 대한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도 어떤 재산권 행사도 못하고 있다. 죄가 있다면 정부와 공공기관의 말을 믿었던 것뿐. 이 상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부는 1987년 광명 개발을 결정하고 토지를 수용하면서 가게를 철거당한 상인들에게 생활터전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3,967㎡(1,200평)의 하안동 땅은 상가 분양을 약속했던 곳. 290명의 상인들이 땅을 불하 받았다. 땅값으로 대한주택공사에 1인당 1,750만원씩을 냈다. 현재 가치로 1억원이 넘는, 서민에게는 거의 전 재산이나 다름 없었다. 290명 중 23명은 땅값을 마련하지 못해 분양권을 포기하기도 했다. 이후 투기꾼들이 몰려들었고 대다수 상인이 2,3배 웃돈을 받고 분양권을 전매하고 떠났다.
하지만 이들 3명을 포함한 일부 상인들은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당시 주택공사가 나눠준 분양권 접수증의 문구에서 찾을 수 있다. 이들이 31년 동안 보관해온 접수증에는 ‘철거 대상이 된 주민들에게 분양하는 것이므로 전매할 경우 고발, 처벌되고 이주대상에서 취소된다’는 문구가 선명하다. 광명에서 잡화점을 운영했던 피해상인 구자태(67)씨는 “그때 주택공사 직원들은 ‘국가에서 주는 것이니 팔면 처벌받는다, 가지고 있다가 분양 받아라’고 수없이 말했다”고 전했다.
구씨 등은 정부를 믿었고, 주택공사를 믿었다. 그러나 분양권을 사들인 투기꾼들이 조합을 이뤄 상가건물을 세우고 그 건물이 대기업에 팔리고 그 대기업이 영업을 하는 동안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자기 가게를 열겠다는 꿈을 품고 분양자격을 유지해온 상인들은 주택공사에, 국토교통부에, 광명시에, 경찰에 약속대로 전매를 단속하고 처벌해 달라는 진정을 수없이 내왔다. 그러나 기관마다 서로 떠넘기고 책임을 회피하기만 했다.
그런데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한국일보가 취재에 들어가자 말을 바꿨다. “법령을 살펴보니 당시 아파트만 전매가 제한돼 있을 뿐, 상가 분양권 전매는 제한이 없었다”는 것. 분양권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공지를 믿고 지금까지 지키고 있던 상인들에게 31년 만에 “오해한 것”이라는 믿지 못할 답변을 내놓았다. 법을 믿었던 힘없고 선량한 상인들을 장장 30년에 걸쳐 농락해 온 정부, 공공기관의 민낯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88년 상가 분양권 접수증의 그 문구
피해 상인들이 보여준 분양권(이주대책 신청) 접수증의 문구는 이렇다. “이주대책은 지구 내 토지 등이 편입 수용됨으로써 생활근거를 상실하신 분을 대상으로 1세대 1이주대책을 수립 시행케 되는 것이므로 일절 전매 또는 전대행위-부동산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위배 시에는 관계법령에 의거 고발 조치뿐 아니라 이주대상에서 제외 또는 취소되오니 관련법규 등을 참조, 재산상 피해가 없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중략) 이주대책의 일환으로 공급받은 아파트 등은 전매 전대행위를 할 수 없으며 위배 시에는 ‘주택건설촉진법’ 제38조의 3 및 제52조에 의거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되며 공급받은 아파트 등은 사업주에 환매됨.”
‘아파트 등’으로 돼 있어 상가도 포함됨이 명백해 보이고, 더구나 이는 상가 분양 신청자에게 나눠준 것이다. 피해상인 중 한 명으로 광명에서 약국을 운영했던 약사 출신 손영순(81)씨는 “분양권 접수증 바로 뒷면에 그 문구가 있었어요. ‘아, 이건 지켜야 되겠구나’ 생각하고 살았어요”라고 말했다. 대한주택공사 명의로 돼 있으며 날짜는 1988년 2월이다. 구자태씨는 “접수증 문구뿐만 아니라 주택공사 직원들도 ‘국가에서 마련한 이주대책이니 분양권 전매는 안 된다’고 말했다”며 “그 말을 했던 주택공사 직원 이름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말씀’을 금과옥조처럼 여긴 구씨 등은 분양권을 팔라는 투기꾼들의 회유를 물리쳤다. 구씨는 “상가 분양권 전매는 5,000만원 정도에 거래됐고, 지금 가치로는 6억원이 넘는다”며 “아파트보다 상가 분양권이 훨씬 비쌌으며 그 때문에 상가 분양권을 받으면 잔치를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당시 상가 분양권을 얻기 위해 갑자기 좌판을 늘어놓는 ‘가짜 상인들’이 많아서, 실제로 가게를 운영해 왔는지 또 새로 만들 상가에 적합한 품목을 파는지까지 까다롭게 심사했다. 최종 290명의 상인들이 분양권을 얻었지만 대부분 팔고 떠났고 현재는 소수의 인원만이 분양권을 유지하고 있다.
구씨 등은 분양권 전매가 심해지자 주택공사와 국토교통부, 경찰, 시청 등에 수 차례 문제제기를 했다. 1993년 주택공사 사장에게 낸 진정서에는 “이주하기 위한 상업용지는 마치 투기꾼 천국인양 290명 중 258명이나 주택건설촉진법을 위반하였으며 불신세력까지 가담하여 갖은 작태로 추한 꼴을 보이고 있습니다. (중략) 원래의 목적대로 지역 주민을 위한 철거민의 이주 대책을 실행하여 34명에 대한 요구에 답하여 주십시오”라고 돼 있다. 주택공사의 답변은 답답하기만 했다. “조치 가능한 사항은 면밀히 검토하겠다”(1993년), “계약자 각각에 대하여 소유권을 이전시행하고 있음을 알려드린다”(2006년), “LH는 현실적인 투기단속 권한이 없음을 혜량하여 주시기 바라며, 향후 생활대책용지를 공급함에 있어 고객님께서 염려하시는 내용을 참고하여 개선 방안을 면밀히 검토할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2015년) 등이었다.
국토교통부는 “(민원을) 광명시로 이송했다”(2015년), 광명경찰서는 “상가입주권 매매 관련 처벌 건수는 ‘해당사항’ 없다”(2007년)고 답했다. 광명시는 민원에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진정을 위해 여기저기 뛰었던 구씨는 뇌경색을 얻었다. 보석감정사 자격증을 보유한 그는 보석가게 운영을 꿈꿨으나, 현재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상인들 이주대책이던 상가는 대기업 손에
그 사이 투기꾼들 위주로 만든 조합이 건축비를 모으고 융자를 받아 상가를 지었다. 구씨 등 피해상인들은 주택공사의 애초 고지대로 분양권 전매로 이뤄진 이런 투기가 언젠가는 처벌받고 바로잡힐 것으로 믿고 참여하지 않았다.
조합은 2003년 이랜드와 계약을 맺고 대부분의 상가 토지 지분과 건물을 팔았으며, 이때도 일부 토지 지분을 가진 피해상인들은 계약을 거부했다. 그러자 이랜드는 2005년 법무법인 변호사를 통해 구씨 등에게 “상인조합이 총회를 열고 토지 지분 전부를 매각하기로 결정했고 현재 토지ㆍ지상 건물 9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건물을 관리ㆍ운영하고 있다”며 “조합 소속인 귀하도 토지 지분을 이전해달라”고 통고해왔다. 그러나 구씨 등은 “290명은 조합이 아니라 애초 법인체를 만들어서 개별적으로 대금을 납입하고 290분의 1로 개별 공유지분 등기를 했다”며 “사유재산을 조합총회에서 처분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거부했다. 구씨는 “철거 상인들을 위한 상가를 만드는 목적이었는데 대기업이 소송까지 거론하며 사실상 권리를 뺏어가려고 했다”고 분개했다.
일부 상인은 이랜드 측에 토지 점유에 대한 부당이득금 소송을 내서 한 달 수십만원 정도를 받고 있을 뿐이다. 피해 상인들은 이랜드가 2003년 건물과 땅을 101억원에 사들였는데, 현재 가치는 3,000억원 가량에 이른다고 알고 있다. 이에 대해 이랜드 측은 “전체 취득가는 400억원이었으며, 2018년 말 재평가된 장부가(현재가)는 토지, 건물 전부 합해서 568억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랜드가 2006년 코람코자산신탁과 체결한 신탁계약을 보면 광명 아울렛의 가치가 2,000억원 가량으로 나온다. 그 사이 물가 상승 등을 감안하면 현재는 그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랜드 측은 토지 명의와 관련해서는 “토지의 95%를 소유하고 있으며 약 20여 명의 토지 공동소유주들이 반대하는 상황”이라며 “지금 모든 토지를 일괄 매입할 의사는 없다”고 말했다. 이랜드 측은 이 건과 관련해서 어떤 불법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31년 만에 내놓은 LH의 황당한 답변
기자는 지난 3일 LH와 국토부에 공통으로 ‘입주권 불법 매도 시 벌금이 부과되고 환매가 이뤄질 것이라는 공사의 공지를 믿었다가 현재까지 불이익을 받고 있는 분들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등을 질의했다.
LH는 첫 답변부터 속이려는 인상이 강했다. LH 관계자는 “알아보니 당시 전매는 없었다”며 “전매는 잔금을 치르기 전에 넘기는 것인데 상인들이 처음 등기를 했다가 그 이후에 이전하는 것은 전매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가 애초 분양권을 받았던 290명 상인들 명단을 확보한 뒤, 이들 명단과 최초 등기자의 이름이 모두 같다는 점을 LH가 확인했는지 묻자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 근거로 전매가 없었다고 답한 것인지 묻자, 다시 알아보고 답을 주겠다고 했다.
이후 LH는 주택건설촉진법의 과거와 현재 조항을 찾아본 뒤 “상가 분양권 전매는 제한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상가 분양권 접수증에 주택건설촉진법을 인용해 분양권 전매가 금지된다는 문구가 들어 있는데도, 그 문구는 상가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주택건설촉진법은 ‘주택’ 분양권의 전매를 제한하고 있어서, ‘아파트 등’이라고 표현한 접수증의 문구와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그 문구를 접수증에 넣은 LH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LH 관계자는 “문구를 (상인들이) 오해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말했다. 당시 주택공사 직원들이 구두로도 상가 분양권 전매 금지를 알렸다는 증언에 대해서는 “당시 직원들은 퇴직해서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LH는 문서로 “당시 관련법령에 따라 생활대책용지는 별도의 전매제한 사항은 없었으며, 사업시행자(당시 대한주택공사)의 동의가 있을 경우에 한해 권리의무승계가 가능했다”며 “생활대책용지 내 상가입주 관련사항은 조합정관 규정 등에 의한 조합 내부문제로 사업시행자가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고 공식 회신했다. 상인들 조합이 알아서 할 문제이며 LH는 상인들의 피해와는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다.
구씨 등 피해 상인들이 과거 수차례 진정서를 냈을 때, LH는 기자에게 답변한 것과 같은 회신은 한번도 한 적이 없다. 구씨는 “이제 와서 불법전매가 아니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며 “마지막으로 우리를 또 속이려는 것 같다”고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믿고 기다린 상인들의 잃어버린 세월
관련 문서들을 보면, LH는 이미 과거에 주택건설촉진법이 상가 분양권 전매를 금지할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를 피해상인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법을 언급하며 과거의 잘못된 공지를 덮으려 또 다른 거짓말을 한 의혹이 짙다.
피해상인들이 애초 공지를 믿고 1993년 주택건설촉진법을 위반한 전매가 횡행하고 있음을 진정서로 알리자, LH는 답변서에서 ‘이주대책으로 분양 받은 시장부지는 소유권 이전등기 완료 전 전매가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 제2조(소유권 이전등기 등 신청의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금지되고 있으므로 우리 공사에서 이 계약에 따른 권리의무를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도록 조치한 사실이 있으며’라고 했다. 애초 공지했던 주택건설촉진법은 슬그머니 빼고, 이제는 다른 법을 끌어다가 설명한 것이다.
LH는 특히 이 답변서 내용을 ‘전매 금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기자에게 해명했다. LH 관계자는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 해당 조항은 잔금을 치른 후 순차 등기를 하는 절차를 명시한 것이고, 상가 분양권 전매가 불법이라는 뜻이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등기 특별조치법은 세금 탈루 등을 막기 위해 등기 의무를 명확히 하기 위한 법이다. 그런데도 이를 전매를 제한한 법인 것처럼 명백히 호도될 수 있는 문구를 써넣고, 이제 와서 그런 뜻이 아니며 문구를 오해한 사람이 잘못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LH의 상급기관인 국토부는 아예 답변 회신을 하지 않았다. 취재에 응한 상인들은 회한이 가득했다. 구자태씨는 “국토부와 LH가 다른 신도시에라도 대체상가를 줘야 하며, 국토부 장관이 나서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상가분양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파혼하게 됐고 평생 홀로 살아왔다. 양화점을 운영했던 피해상인 이종성(73)씨는 “(정부와 LH가) 사람을 XX(바보라는 취지)로 만들었다”고 했다. 손영순씨는 “백화점 안에서 약국을 할 수 있다니까 그때 희망에 부풀었는데” “우리가 정도(正道)라고 생각하고 기다렸던 거지”라고 말했다.
김기윤 변호사는 “법과 다르게 ‘아파트 등’으로 잘못 고지한 것은 LH에 책임이 있다”며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LH가 국민을 위한 공공기관으로서 억울함을 풀어주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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