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답답함에 ‘파는 공기라도…’
공기 캔, 공기 카페, 산소 캡슐까지 등장
수도권 및 충북지역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10일 오전 서울 잠수교에서 바라본 한강 강변이 미세먼지와 안개로 뿌옇다. 이한호 기자

어김없이 뿌연 하늘이 찾아왔다. 아침에 눈을 떠 날씨와 함께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는 일은 이제 일상이 됐다. 글로벌 대기오염조사기관(AirVisual)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칠레에 이어 두 번째다. 불명예스러운 2위.

공기를 안 마실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무 공기나 마실 수도 없는 상황이다 보니 공기를 파는 이들이 속속 등장했다. 미세먼지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농담으로만 여겨지던 일이 현실이 된 것이다. 공기 캔, 공기 카페, 산소 캡슐 등 맑은 공기를 갈구하는 이들을 위한 제품과 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지리산 공기 캔에 담아 판매
황병욱씨가 2017년 판매를 시작한 지리산 공기 캔.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서 채취한 공기를 압축해 담고 있다. 이미령 인턴기자

지리산 공기를 담은 공기 캔 ‘지리에어’가 대표적이다. 울창한 활엽수림 덕분에 청정 산소로 가득한 지리산의 공기를 압축해 담은 것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이 공기 캔을 생산하는 40평(약 132㎡) 남짓의 공장이 있다. 캐나다 공기 캔 기업에 몸담고 있던 황병욱(54) 씨가 2017년 경남 하동군과 협약을 맺고 국내에 세운 공장이다.

지리산 공기 캔은 무색, 무맛, 무취, 말 그대로의 ‘공기’를 담고 있다. 3ℓ짜리 공기 캔은 500㎖ 생수병보다 약간 작다. 무겁지 않고 들었을 때 다 쓴 헤어스프레이처럼 느껴진다. 3ℓ캔에 약 120회(1초에 1회 흡입 시)까지 마실 수 있는 지리산 공기가 담겨 있다고 업체 측은 설명했다. 성분 구성도 산소 21%, 질소 79%, 그 외 일산화탄소 등으로, 응급 구호용이나 운동선수 사이에서 사용되는 산소 캔(산소 95% 이상)과도 다르다.

황씨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와 함께, 혹은 장거리 운전 중에 커피 대신 공기를 마신다”며 “(공기를 마시면) 상쾌하고 재충전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 자유롭게 숨을 쉴 수 있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하는 이들이 제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 ‘맑은 공기’ 찾는 이들 공략… 공기 카페, 산소 캡슐까지 등장
‘에어링 카페(공기 마시는 카페)’ 곳곳에 설치된 ‘공기 마시는’ 자리. 버튼을 누르면 대나무통에 뚫린 구멍에서 공기가 배출된다. 이미령 인턴기자

황씨는 사업을 확장해 9월 상수역 인근에 ‘에어링 카페(공기 마시는 카페)’도 열었다. 겉보기에는 여느 카페와 다름 없어 보이지만 이곳 역시 맑은 실내 공기를 강조하고 있다. 천장과 창가 자리 등 실내 곳곳에 설치된 작은 대나무통과 배관을 통해 지리산 공기가 나오는 시스템이다. 카페에는 지속적으로 카페 내부 대기질 수치를 보여주는 모니터도 설치되어 있다. 입장료는 따로 없고 차나 커피를 마시며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있다.

이날 카페를 방문한 장원(49) 씨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바깥 활동이 꺼려진다”며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 종종 방문하는 편”이라 밝혔다. 다만 아직까지는 신기하다는 반응이 다수다. 박소희(48) 씨는 “실제로 제공되는 지리산 공기가 특별한지는 모르겠다”면서도 “이제 정말 공기까지 파는 시대가 온 걸 보니 환경이 많이 오염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산소 발생기가 설치되어 있어 산소가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산소 캡슐’. 솜누스 캡처.

문을 닫고 들어가 누우면 산소가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산소캡슐’도 등장했다. 성인 한 명이 들어가 누울 수 있는 크기의 캡슐 내부에 산소 발생기가 설치되어 있어, 산소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시스템이다. 수면캡슐 제작 업체 솜누스가 운영 중인 카페에서는 한 시간에 9,000원으로 수면 캡슐을 이용할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사우나, 게스트하우스 등에서 주로 설치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직원들의 복지를 고려해 산소캡슐을 설치하는 회사도 있다.

◇ ‘가스실’ 오명 인도 뉴델리에도 등장한 산소 카페

대기오염에 대한 우려와 그 해결책에 대한 고민은 국내 사정만은 아니다. 실제 지난달 최악의 대기오염으로 ‘가스실’ 같다는 말까지 나온 인도 뉴델리에도 ‘산소카페’가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299루피(약 4,960원)을 내면 신선한 산소를 15분간 마실 수 있다. 코로 연결된 튜브를 통해 라벤더 등 향이 첨가된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이다.

캐나다 업체 바이탈리티에어는 2017년부터 로키 산맥의 공기를 수집해 캔에 담아 팔고 있다. 모세 람 바이탈리티에어 CEO는 BBC와 인터뷰에서 “애초 장난스러운 선물용으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제품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고 밝혔다. 영국 기업 에테르 역시 영국의 교외 지역에서 맑은 공기를 병에 담아 판매 중이다. 자신들의 사업을 ‘공기 농사’라고 명명한 이들은 공기 판매로 얻은 수익금을 마스크 제작에도 투자하고 있다.

영국 교외 지역에서 수집한 맑은 공기를 병에 담아 판매한다고 밝힌 영국 기업 에테르의 홍보 영상. 유튜브 캡처

다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공기, 산소 제품이 미세먼지 대처에 절대적인 효과를 보장하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최천웅 강동경희대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이미 미세먼지를 마셨는데 순간적으로 맑은 공기를 마신다고 해서 좋아지는 효과는 없다”며 “심리적인 효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스크를 착용하거나 공기청정기를 통해 환기를 자주 시켜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미령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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