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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제임스 르 메주리어, 시리아 내전 인명구조대 ‘화이트헬멧’ 창설한 영웅

입력
2019.12.16 04:33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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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메주리어는 시리아 내전 인명구조대 ‘화이트헬멧’의 출범을 돕고 국제후원단체 ‘메이데이 레스큐’를 조직해 활동을 지원한 영국군 정보장교 출신 증동 지역 보안ㆍ안전 전문가다. 그는 국제기구의 거대 평화프로젝트보다 내전지역 주민들의 힘으로 다져가는 작은 평화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시리아 국경 터키 남부 화이트헬멧 훈련캠프의 메주리어. AP 연합뉴스
제임스 메주리어는 시리아 내전 인명구조대 ‘화이트헬멧’의 출범을 돕고 국제후원단체 ‘메이데이 레스큐’를 조직해 활동을 지원한 영국군 정보장교 출신 증동 지역 보안ㆍ안전 전문가다. 그는 국제기구의 거대 평화프로젝트보다 내전지역 주민들의 힘으로 다져가는 작은 평화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시리아 국경 터키 남부 화이트헬멧 훈련캠프의 메주리어. AP 연합뉴스

시리아 내전 인명구조대의 공식 명칭은 ‘시리아 민방위대(Syria Civil Defence)’지만 ‘화이트헬멧(White Helmets)’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2017년 만해대상 평화상을 수상하면서 국내에도 꽤 알려졌지만, 더 전인 2014년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생후 10일 된 아이를 구조한 뒤 흐느껴 우는 영상으로 세계인을 감동시킨 바 있다. 그 장면이 포함된 2016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White Helmets’은 이듬해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2017년의 ‘Last Men in Aleppo’는 그 해 선댄스영화제 다큐부문 심사위원대상을 탔다.

시리아 정부군의 반군 지역 무차별 폭격은 2012년 말부터 시작됐다. 많은 이들이 피난을 가고 국경을 넘었지만 끝내 마을을 떠나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정부군은 그들을 뭉뚱그려 반군이라 지목했고, 더러는 테러집단의 배후세력이라 하기도 했다. 그렇게 민간 시설 및 거주 지역 폭격을 정당화했다.

폭격이 멎으면 시민들은 콘크리트 더미로 달려가 생존자를 구조하곤 했다. 추가 붕괴로 다치고 목숨을 잃는 이들도 생겨났다. 국경 너머 터키 이스탄불에서 그런 사정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이가 있었다. 영국군 장교 출신 안전ㆍ보안 전문가 제임스 르 메주리어였다.

메주리어는 시민들이 최소한의 훈련과 장비만 갖춰도 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생명을 구조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전역 후 만 17년 동안 유엔과 여러 국제단체 및 민간 보안회사에서 일해온 그는 매년 수백만 수천만 달러씩 퍼붓는 중동 평화ㆍ안보 프로젝트들보다 그들 시민들에게 헬멧과 로프를 들려주는 게 더 값지고 절박한 일이라 판단했다. 그는 영국과 미국, 일본 정부기관과 중동 지원기금 운영자들을 설득해 후원금 30만 달러를 모았다. 그리고 터키의 비영리 구난단체인 ‘AKUT수색구조협회’의 도움을 얻어 7일 초단기 인명구조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2013년 초 시리아 제2 도시 알레포(Aleppo)에서 자원한 시민 20명이 처음 그 프로그램을 이수했다.

내전이 격화하면서 지원자도 점차 늘어났다. 훈련 프로그램도 1개월로 확장되고 세분화해, 형식적인 팔ㆍ다리 부목법은 골반 대퇴골 부목법으로, 단순 지혈은 팔ㆍ다리 절단 지혈로 전문화했다. 화재진압 장비와 기술, 생존자 유무와 위치를 보다 정교하게 파악하는 청음 장비 조작 기술도 포함됐다.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Idlib)에서 최남단 다라(Daraa)까지, 반군이 있고 전투와 폭격이 벌어지는 곳이면 어디나 그들이 있었다. 전국 100여 곳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그들이 2014년 10월 단일 네트워크의 ‘시리아민방위대’로 정식 출범했다. 누구는 시리아인들의 희망이라고 하고 누구는 휴머니즘의 마지막 보루라고도 부른, 총 인원 3,200여 명의 화이트헬멧이 그렇게 탄생했다.

메주리어는 ‘메이데이 레스큐 Mayday Rescue’라는 조직을 만들어 후원금을 모으고, 훈련을 주선하고 장비를 보급했다. 위키피디아 등 다수의 자료들은 그를 화이트헬멧의 공동창설자로 소개하고 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공개적으로 화이트헬멧을, 단수로든 복수로든 1인칭으로 지칭한 적이 없었다. 그는 늘 “나는 도우미일 뿐”이며, “영웅은 그들”이라고 말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그는 폭격 현장에서 직접 인명을 구조하거나, 화재를 진압하거나, 불발탄을 수거하거나, 끊긴 도로와 전기ㆍ상수도 시설을 복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화이트헬멧도 없었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100% 진실도 아니었다. 중동 전문 영국인 저널리스트 루이즈 캘러헌(Louise Callaghan)의 말처럼, 적어도 그는 “화이트헬멧의 영웅”이었다. 그가 11월 11일 새벽 터키 이스탄불 베욜루(Beyoglu)의 사무실 겸 자택 인근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터키 경찰은 “타살 흔적은 없다”고 밝혔다. 향년 48세.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 당국은 화이트헬멧을 반군과 테러집단을 돕는 적으로 간주했다. 그들과 일부 음모론자들에게 메주리어는 테러집단 배후 조종자 혹은 제국주의자들의 고급 스파이였다. 메주리어는 러시아 당국의 사이버 흑색선전에도 맞서야 했다. 화이트헬멧 공식 트위터 @SyriaCivilDef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 당국은 화이트헬멧을 반군과 테러집단을 돕는 적으로 간주했다. 그들과 일부 음모론자들에게 메주리어는 테러집단 배후 조종자 혹은 제국주의자들의 고급 스파이였다. 메주리어는 러시아 당국의 사이버 흑색선전에도 맞서야 했다. 화이트헬멧 공식 트위터 @SyriaCivilDef

제임스 르 메주리어(James Gustaf Edward Le Mesurier)는 1971년 5월 25일 싱가포르 창이 공군기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영국인 해병대 장교였고 스웨덴계 어머니는 주부였다. 그는 초ㆍ중등학교를 영국서 다녔지만 군영에서 자라다시피 했고, 영국의 학사장교 프로그램(Queen’s Belfast Officer Training Corps)으로 북아일랜드 얼스터대와 웨일즈 에버리스트위스(Aberystwyth)대에서 국제정치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후 샌드허스트(Sandhurst) 영국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해 94년 퀸스메달을 받으며 최우등 졸업, 육군 그린재킷(경보병부대) 2대대 중위로 임관했다. 그는 노르웨이 극지 전쟁지휘관 훈련 코스를 별도로 이수할 만큼 군무에 열정적이었고, 리더십도 탁월하다는 평을 듣곤 했다. 벨파스트에서 중대장으로 복무했고, 윈체스터 육군훈련부대 교관으로도 일했다.

하지만 그의 주무대는 보스니아와 코소보 등 분쟁지역이었고, 주 임무는 분쟁 저지와 평화 유지를 위한 지역 동향 정보 수집ㆍ분석이었다. 그는 호감 가는 외모에 언변도 좋아 사라예보 주둔 당시 지역 종교지도자와 함께 유엔 활동을 홍보하는 TV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고, 코소보 주둔 땐 지역 에너지회사의 대형 비리를 적발할 만큼 정보장교로서도 유능했다. 2000년 대위로 전역한 뒤부턴 프리랜스 평화ㆍ안보 전문가로서, 가장 뜨거운 시장이던 중동서 활동했다. 그의 주요 고객은 유엔과 영국과 미국,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공화국 등이었고, 민간ㆍ국영 정유시설과 항만 안전ㆍ전략컨설팅 그룹서도 일했다. 2004년 말 인도네시아 쓰나미 당시 현장에 가서 인명구조 및 자원봉사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최상급 경력과 인맥과 아랍어 능력을 지닌 고액 연봉의 업계 최고 중동전문가였다.

그런 배경이 당연히 화이트헬멧 후원활동의 밑천이었지만, 동시에 그의 족쇄이기도 했다. 시리아 및 러시아 정부는 그를 알카에다와 연계된 테러 배후조종자라 비난했고, 일부 음모론자와 좌파 반미 활동가들은 그를 제국주의자들의 중동 스파이라 의심했다.

전역 후 드러난 그의 이력은 스파이나 일반적인 용병 트랙과는 사뭇 달랐다. 아랍에미리트공화국서는 정유ㆍ가스시설 대테러 경비인력을 양성했고, 알카에다의 테러 위협 속에 치러진 2010년 걸프컵 예멘 대회 땐 보안 업무를 지휘했다. 그가 일한 중동지역 민간 보안업체 ‘굿 하버 Good Harbor’는 부시-체니를 전쟁범죄자라 비판했던 전직 백악관 군사 자문위원 리처드 클라크(Richard Clarke)가 운영한 회사였다.

메주리어가 여유로운 은퇴자의 삶 대신 화이트헬멧 후원사업을 시작한 2012년 말, 그에겐 사라예보 전쟁터에서 만난 강아지 ‘플리바(Pliva)’와 국제개발 분야에서 일하던 두 번째 아내 토시(Sarah Tosh), 토시와 낳은 연년생 두 딸(Cicely 당시 2세, Darcey 당시 1세)이 있었다. 그는 얼마 뒤 토시와도 이혼, 2018년 7월 스웨덴 국적의 전 영국 외무 공무원 엠마 빈베리(Emma Winberg, 39)와 재혼했다. 빈베리는 남편과 함께 ‘메이데이 레스큐’를 운영했다.

메주리어는 유엔과 EU 등을 지목해 “그 기구들이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곤, 막대한 예산의 광역 평화 프로젝트보다 작은 마을 단위에서 가시적인 성과들을 획득해가며 평화와 안정의 기초를 다져가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믿게 됐다고 했다. 시리아는 그러니까, 그 신념의 시험장이었다. 2014년 그는 “내 생애를 통틀어 지금만큼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던 때가 없었다”고 말했다.

화이트헬멧은 2014년 공식 출범 이후 252명의 대원을 잃었고, 10만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들은 수많은 상을 탔고, 여러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았다. 화이트헬멧 홈페이지.
화이트헬멧은 2014년 공식 출범 이후 252명의 대원을 잃었고, 10만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 그들은 수많은 상을 탔고, 여러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았다. 화이트헬멧 홈페이지.
화이트헬멧 홈페이지는 여성 대원 220여 명을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여성들"이라 소개했다. 이슬람 전장의 여성들이 '가장 용감한 화이트헬멧 대원들'이라 해도 좋았을 듯하다. 화이트헬멧 홈페이지.
화이트헬멧 홈페이지는 여성 대원 220여 명을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여성들"이라 소개했다. 이슬람 전장의 여성들이 '가장 용감한 화이트헬멧 대원들'이라 해도 좋았을 듯하다. 화이트헬멧 홈페이지.

더블 탭(Double Tap)’이란 게 있다. 1930년대 중국 상해 조계지 영국 경찰이 범죄자를 제압하는 데 활용한 권총 테크닉에서 유래한 것으로, 첫 발을 쏜 뒤 반동으로 튀어 오른 총을 서서히 내리며 가늠쇠에 상대의 머리가 조준되는 순간 방아쇠를 또 한 번 당기는 기술 혹은 수법을 의미하는 용어다. 그러는 게 명중률도 높고 방탄복을 입은 적을 제압하는 데도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2차대전 이후 나치 전폭기들이 영국 본토 공습 때 저 원리를 답습했다. 1차 폭격을 가한 뒤 현장을 수습하려고 몰려든 군인과 치안ㆍ의료 인력, 시민들을 노려 2차 폭격을 가하는 것이다. 시리아- 러시아 공군이 구사한 전술이 딱 그거였고, 주요 타깃이 화이트헬멧이었다.

2015년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메주리어는 “대개 15~30분 뒤 2차 폭격이 시작된다. 화이트헬멧 대원들 중에는 건물 잔해에 깔린 생존자의 절박한 시선에 붙들려 차마 피신하지 못하고 그대로 머무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2012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만 6년 동안 최소 10만여 명의 인명을 구조하는 동안, 화이트헬멧 대원 252명이 목숨을 잃었고, 500여명이 평생 장애를 동반하는 중상을 입었다. 2014년 장장 16시간의 사투 끝에 생후 10일 된 아이를 구조한 뒤 벅찬 울음을 터뜨렸던 화이트헬멧의 ‘스타’ 칼레드 오마르 하라(Khaled Omar Harrah)도 2016년 더블 탭 폭격에 목숨을 잃었다. 메주리어는 “화이트헬멧의 사상자 비율은 아프간전쟁과 이라크전 전투병 사상자 비율보다 높고, 1차대전 참호전의 그것보다 더 끔찍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시리아ㆍ러시아 군에게 화이트헬멧은 명분이야 어떻든 반군 지역의 기반을 지탱하는 ‘적’이었다. 고프로(Go-pro) 동영상으로 병원ㆍ학교 등 민간 시설 폭격 현장과 시민 학살 실태를 고발하고, 2017년 사린가스 공격 등 전쟁범죄의 전모를 거의 실시간 외부 세계에 폭로한 감시자이자 증언자이기도 했다. 시리아 내전이 인류 전쟁 역사상 가장 잘 기록된 전쟁이라는 평가의 이면에 화이트헬멧이 있었다. 그들은 핵심 표적이었다.

러시아가 군사 개입을 시작한 2015년 9월부터 화이트헬멧과 메주리어에 대한 사이버 공격도 본격화했다. 러시아의 사이버 화력은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칠 만큼 막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얼마간의 사실에 거짓과 음모론을 버무린 그들의, 화이트 헬멧 등에 대한 조직적 공세는 주요 사이버 검색 엔진과 SNS의 알고리즘을 흔들 정도였고, 적어도 평범한 시민들을 께름칙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시리아 평화를 위한 비정부기구 ‘시리아 캠페인’은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의 사이버 선전은 주류 언론의 영향력을 압도할 정도여서 가히 전쟁의 새로운 양상이라 할 만하다”며 “분석 결과 2016~2017년 시리아 내전 주요 10대 이슈에 대한 그들의 무한 복제(bots and trolls) 선전 자료는 전 세계 네티즌 약 5억6,000만 명에게 노출됐다”고 전했다.

메주리어는 “어느 테러리스트가 제 목숨을 걸고 시민들의 목숨을 구하러 다니느냐”고 반문했다. 알자지라 인터뷰에서 그는 ‘한 생명을 구하는 일이 곧 인류 전체를 구하는 일’이라는, 쿠란에서 가져왔다는 화이트헬멧의 모토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모두 비범한 일을 선택한 평범한 시민들이다.(…) 내전 전 제빵사였고. 건설인부였고, 택시 기사였고, 학생이었고, 교사였던 이들이지만(…) 총을 들거나 피난을 떠나는 대신, 부상자를 위해 들것을 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들은 정부군 병사들을 구조하기도 한다. 그들의 일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지 목숨을 판단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반군 남부 거점 도시 다라가 정부군에게 함락되기 직전, 처형 위기에 몰린 화이트헬멧 대원 및 가족 422명이 이스라엘 검문소를 거쳐 요르단으로, 그야말로 극적으로 피신했다. 영ㆍ미를 포함, 여러 관련국 정부를 설득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한 그 탈출을 성사시킨 게 메주리어였다. 그들은 모두 영국과 캐나다 등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메주리어는 그 소식을 전해준 한 기자에게 “그들은 그야말로 위대한 인간들이다. 그들을 품게 된 건 영국의 행운이다”란 문자를 보냈다.

2014~18년 만 4년간 메이데이 레스큐가 거둔 1억2,700만 달러의 막대한 후원금, 다라 탈출을 도운 메주리어의 영향 등은 그의 스파이 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였다. 2016년 11월 화이트헬멧 대원들이 구조 장면을 정지영상처럼 연출해 찍은 비디오 클립을 당시 유행하던 ‘마네킹 챌린지 해시태그(#MannequinChallenge)’를 달아 공개했다가 “위기를 연기하는 배우들”이라는 비아냥을 산 일, 일부 대원이 비무장 원칙을 어기고 총을 들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가 “이래도 평화의 구조대냐”라는 비판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일부 악의적인 블로거와 러시아 국영 방송 등을 상대로 소송이라도 걸라는 조언에 메주리어는 “그 비용으로 한 명이라도 더 구하는 게 낫다”고 했고, 그를 영국 4대 정보기관 중에서도 가장 평판이 안 좋다는 MI5(국내정보 파트) 장교라고 주장한 어떤 블로거를 두고는 “어딜 봐서 내가 그 빌어먹을 기성양복(off-the-peg suits)이나 입고 다닐 사람처럼 보이느냐”고 장난스럽게 화를 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가 숨진 채 발견되기 불과 사흘 전 러시아 외무장관은 자기 트윗에 그를 ‘테러조직과 연계된 전직 MI6(해외파트) 요원’이라고 비난했다.

저 모든 정황들이 그를 맥 빠지게 했을 것이다. 그의 아내는 그가 우울증 치료제와 수면제를 복용했다고 터키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아마도 시리아내전의 전황 자체였을 것이다.

시리아 정부와 야권, 그리고 이른바 시리아 시민사회 대표단은 지난 10월 말 스위스 제네바에 모여 내전 종식을 위한 새로운 헌법 제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한 유엔 시리아 특사는 “역사적 순간”이라며 “내전 고통을 끝내기 위한 실질적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 러시아 전폭기를 앞세운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의 마지막 거점인 북부 이들리브 주 탈환을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보름 전인 10월 15일 ‘국경없는의사회’도 시리아에서 철수했다. 위험지역에 가장 먼저 들어가 가장 마지막까지 버티기로 정평이 난 그들조차 “더 이상 국제 직원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화이트헬멧 대원들은 지금도 현지에서 활동 중이다.

근년의 메이데이 레스큐는 소말리아 모가디슈와 레바논 북부 베카 계곡의 응급의료 지원 시스템 구축 사업 등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메주리어는 시리아의 저 모든 절망적 상황을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오래된 기후 활동가들이 악화하는 기후상황을 속절없이 지켜보며 늪처럼 빠져 든다는 무력감과 상실의 슬픔 ‘클라이밋 그리프(Climate Grief)’, 비영리ㆍ공익 활동가들이 흔히 겪는다는 이른바 번아웃(Burn Out, 정신적 육체적 탈진)이 모두 메슈리에의 사정이기도 했을 것이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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