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오른쪽) 교황이 11일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주례 일반알현 행사에 앞서 연설하고 있다. 바티칸=EAP 연합뉴스

바티칸 교황청이 빈자(貧者)를 돕기 위해 모금한 특별헌금의 90%를 재정적자를 메우는 데 전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방만한 재정 운용에 따른 손실을 기부금으로 충당한 셈이어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프란치스코 교황의 신뢰성에도 치명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2일(현지시간) 교황청이 해마다 전 세계에서 걷는 ‘베드로 성금’ 5,000만유로(약 663억원) 가운데 10% 정도만 자선활동에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베드로 성금은 가톨릭 신자들이 매년 6월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는 데 써달라며 헌금하는 교황의 자선기금이다. 나머지 성금은 대부분 바티칸의 부실행정에서 비롯된 비용 낭비를 보전하는 데 지출됐다. 이런 내용은 소수의 바티칸 고위층만 알고 있으며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성금 전용 사실이 공개될 경우 바티칸의 재정 운용이 타격을 입을까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교황청은 오래 전부터 베일에 싸인 재정 불투명성 탓에 여러 스캔들에 휩싸였다. 최근엔 영국 런던의 부동산 투자를 둘러싼 비리까지 터져 바티칸 재정감찰관이 사임하기도 했다. 교황청 경찰은 지난 10월부터 바티칸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국무원의 재정 상태를 조사하고 있는데, 런던 투자금의 일부가 성금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베드로 성금의 자산은 6억유로로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할 당시 7억유로보다 크게 줄었다. 신문은 “자산 감소는 거의 투자 실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실한 투자는 교황청의 재정난으로 이어졌다. 교황청이 지난해 지출한 3억유로 중 재정적자 규모는 전체의 20%가 넘는 7,000만유로에 달했다. WSJ는 “교황청의 재정 문제가 지속되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진하는 내부 개혁의 진전이 더디다는 사실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교황청 측은 성금 사용처와 관련한 질의에 답하지 않았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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