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연금 수급 연령(62세)을 2년 늦추는 연금개혁을 추진하면서 집권 2년 반 만에 최대 위기에 빠졌다. 노동계의 총파업으로 파리 지하철 16개 노선 중 14개가 멈춰 서는 등 파리 일대 교통이 마비됐다. 1년 전 그는 유류세 인하,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는 ‘노란 조끼’ 시위가 확산되자 이들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 사태를 수습했지만 이번엔 연금개혁에 우호적인 의회에 기대어 정면 돌파할 기세다.
□ 저출산과 기대수명 상승에 따른 연금재정 안정화는 주요국 지도자들의 공통된 고민이다. ‘노동자의 영웅’ 룰라 전 브라질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고이즈미 전 일본 총리도 연금개혁에 손을 댔으나 결과는 달랐다. 룰라 전 대통령은 집권 초 지지세력인 노조의 반발에도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공무원연금을 과감하게 손질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평화와 복지’를 강조하는 연정파트너 공명당의 손을 빌려 2004년 공적연금 수술에 성공했다. 반면 2018년 월드컵 기간 중 구렁이 담 넘듯 연금개혁안을 발표했던 푸틴 대통령은 저항에 직면하자 임시변통으로 개혁을 마무리했다.
□ ‘코끼리 옮기기’만큼 어렵다는 연금개혁의 성패는 강력한 리더십 혹은 타협 가능한 정치적 환경 유무에 달려 있다. 적정소득 보장, 사각지대 해소, 재정 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는 우리 현실은 어떨까. “충분한 논의 과정을 거쳐 정부안을 마련해 달라”고 한 뒤 뒷짐지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나, ‘사지선다형’ 개혁안을 내놓은 정부, 보험료 인상이 포함된 연금개혁안을 정부가 제안할 경우 정치 공세의 도구로 삼을 게 뻔한 야당 행태를 보면 눈앞이 캄캄하다.
□ 한 가지 희망은 선거제도 개편이다. 소득대체율 60%가 넘는 최고 수준의 노령연금(NZS)을 갖고 있지만 거대 정당인 국민당과 노동당이 연금개혁을 놓고 10여년간 정쟁만 일삼던 뉴질랜드가 좋은 예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유지하며 번갈아 집권하던 양당은 1984년부터 96년까지 선거 때마다 연금 축소와 확대를 놓고 대립했다. 합의가 이뤄진 건 96년 비례제 방식 선거제도가 도입되면서다. 연금제도의 안정을 원하는 소수 정당이 의회에 진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면서 합의를 이뤘다.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으로 소수 정당의 활로를 열어주는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주시하게 되는 또 다른 이유다.
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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