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몸값 높은 톱스타를 내세워 뜨거운 경쟁을 벌여왔다. ‘네파’는 전지현, ‘K2’는 수지, ‘디스커버리 익스페디션’은 공유, ‘아이더’는 박보검이 광고모델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블랙야크’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부터 실제 산악인과 해발 4,000m 이상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동물 ‘야크’를 등장시킨 TV 광고로 주목 받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블랙야크’는 지난달부터 스타 모델인 이승기 대신 실제 산악인과 고산지대에서 서식하는 동물 야크를 등장시킨 TV광고를 방영하고 있다. 광고화면 캡처
◇스타모델 의존 대신 브랜드 정체성 부각

블랙야크는 지난해 이승기를 광고모델로 발탁하고 올해까지 장기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올 겨울부터 TV 광고에서 이승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간 브랜드 인지도와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빅 모델’의 활용도를 높여왔지만, 이제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가치에 좀더 집중하려는 의도다.

11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블랙야크처럼 브랜드의 본질이나 정통성을 강조하려는 시도가 최근 확산되기 시작했다. 스타모델이나 유명 인플루언서 등 단기간에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전략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를 전달하는 데 투자하려는 것이다. 특정 소비층을 겨냥한 마케팅에서 벗어나 스토리와 콘텐츠를 앞세워 전 연령층으로부터 공감을 얻어내면서 자사 제품에 대한 충성도까지 높이려는 승부수가 깔려 있다.

내년에 설립 47주년을 맞는 블랙야크는 이런 의지가 확고하다. 창업주 강태선 회장이 1973년 종로5가에 ‘동진산악’이라는 등산 장비전문점을 낸 게 블랙야크의 모태다. 제주 출신인 강 회장이 한라산을 등반하던 초심을 발판 삼아, 이번 광고부터 등산의 역사와 자연의 보존이라는 콘셉트로 접근해 이를 스토리화했다.

더불어 지난 2014년 미국 포틀랜드의 라이프웨어 ‘나우’를 인수하면서 ‘지속가능 경영’으로 브랜드 철학을 확장했다. 나우는 이불이나 배게 등에서 사용한 보온 충전재를 엄격한 세척과 소독과정을 거쳐 재가공해 사용하는 브랜드다. 자연친화적인 제작과정이 윤리적 패션은 물론 ‘착한 소비’를 이끌고 있다. 이러한 기업 정신을 젊은 세대와 공유하기 위해 ‘나우매거진’을 독립서점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금은 전액 기부하는 등 브랜드의 가치를 전파하고 있다.

블랙야크 관계자는 “TV광고처럼 미지의 땅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을 이어가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브랜드 본질의 시작점”이라며 “사람과 자연, 미래 가치로까지 브랜드의 정체성을 넓히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정그룹은 지난해부터 1974년에 지어진 인천의 1호 물류센터를 업사이클링해 복합생활쇼핑공간 ‘동춘175’를 열었다. 이곳에선 아웃렛 형태의 쇼핑을 즐길 수 있고, 전시회나 마술쇼, 영화제 등 문화공연도 진행된다. 세정그룹 제공
최근 ‘동춘175’에서는 부산국제단편영화제가 열려 인근 주민들이 영화를 즐기고 있다. 세정그룹 제공
◇첫 물류센터가 문화공간 돼 ‘과거 보존’

의류 브랜드 ‘올리비아로렌’ ‘인디안’ 등으로 잘 알려진 세정그룹도 브랜드 가치를 보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 용인시에 문을 연 복합생활쇼핑공간 ‘동춘175’을 통해서다. 1974년 설립된 세정의 1호 물류센터를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재단장했다. 동춘175는 세정의 모태인 ‘동춘상회’(1968년 개업)와 주소지인 ‘동백죽전대로 175번길’의 번지수에서 이름을 따왔다. 사업 초창기의 초심을 이어가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세정 측은 설명했다.

동춘175에는 세정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대형 자수기, 뜨개질 기계인 환편기 등도 전시돼 있다. 올해는 부산국제단편영화제와 마술쇼 등 가족 단위 고객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연도 진행했다. 세정 측은 “과거와 현재를 버무려 세정그룹의 정통성을 한 눈에 보여주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빈폴’도 브랜드를 재정비하며 새 단장을 시도하고 있다. 내년 봄·여름(S/S) 시즌부터 변경된 로고와 디자인이 반영된 제품을 출시한다. 빈폴 관계자는 “그간 다소 방치했던 브랜드의 역사를 되짚고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투자”라며 “젊은 소비자들에게도 단순히 오래 된 브랜드가 아닌 전통 있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해외 명품브랜드 ‘구찌’는 지난 시즌 ‘주미’ 라인을 선보이며 “여배우이자 실험주의 뮤지션인 주미 로소우에서 영감을 받은 핸드백”이라는 스토리를 함께 소개했다. 구찌 제공
명품브랜드 ‘펜디’는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일명 ‘바게트 백’을 올초 재출시하며, 당시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통해 이 가방을 유행시켰던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를 메인 모델로 기용했다. 펜디 제공
◇‘브랜드 스토리’ 꼭 챙기는 명품브랜드

해외 명품 브랜드들은 일찌감치 브랜드의 가치와 전통성에 신경을 써왔다. 구찌와 펜디, 루이뷔통 등은 수년 전부터 자사 구매 고객이나 홈페이지 가입 회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도 브랜드에 스토리를 넣고 있다. 신제품 소개뿐 아니라 제품명의 어원과 제작 방법까지 설명에 보탠다. 구찌의 경우 최근 출시한 ‘주미’ 브랜드 소개 메시지에 여배우이자 실험주의 뮤지션인 주미 로소우의 이름을 딴 새로운 핸드백이라는 스토리를 담았다.

펜디는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일명 ‘바게트 백’을 올 초 다시 출시했다. 당시 드라마 ‘섹스앤더시티’를 통해 이 가방을 유행시킨 할리우드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를 메인 모델로 등장시켰다. 최신 유행에 민감한 패션업계에서 50대 여배우를 기용하는 건 파격적인 시도였지만, 브랜드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진전된 전략으로 호평 받았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명품 브랜드들은 오래 된 제품들을 새 단장해 출시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브랜드 가치에 대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적극 알려왔다”며 “이런 움직임이 국내 토종 패션업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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