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안게임 60년 만에 우승, 새벽까지 부부젤라 불며 열광
“반세기 남북 갈등도 날려” … 축구 열기에 외국인 관광객 늘어
1억 인구의 베트남은 11일 온종일 축제 분위기였다. 전날 동남아시안(SEA)게임 축구에서 박항서호가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60년만에 금메달을 거머쥐자 너나 없이 축구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신문과 방송 등 언론들의 첫 번째 뉴스도 단연 축구 금메달 소식이었다.
온라인 매체 징의 득 쯔엉 쩐(31) 축구 전문기자는 “‘박항서 매직’이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효하다는 데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면서 “그와 함께 할 앞으로의 시간들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계약이 연장되기는 했지만 한국이 박항서 감독을 다시 데려가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2년 전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은 뒤 종종 접하던 승리 소식이지만, 이날만큼은 또 달랐다. 동족상잔의 베트남전(1975) 이후 통일베트남이 SEA게임에서 축구로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을 호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년 12월 15일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을 들어 올리며 동남아 최강임을 확인하더니 이번에는 쐐기를 박은 것이다.
호찌민시 외교국 소속의 응우옌 린(35)씨는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 역사를 2년 가까이 계속 새로 쓰고 있다”면서 “보면 볼수록 굉장한 감독이고, 베트남 국민이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경기 종료와 함께 오토바이를 몰고 길거리로 뛰쳐나온 이들은 동이 틀 때까지 부부젤라를 불며 승리를 만끽했고, 동남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랜드마크 81(461m)도 이날 상층부 조명을 붉게 해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반세기 전 베트남전 승리로 통일은 이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남북 간 심리적 ‘분단’은 베트남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하노이 출신의 회계사 투이(33)씨는 “게임을 보면서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데 같은 베트남 사람들끼리 뭉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필드를 뛰는 선수들이 전국 각지에서 선발됐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감독은 2년 전 부임 직후 파벌, 지역주의를 깨고 실력으로 선수들을 선발해 이미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호찌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마이 리엠(28)씨는 “박 감독의 축구는 베트남 사람들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일하는, 각국의 사람들을 결속시킨다”며 ‘어메이징 박항세오(박항서 최고)’를 연발했다.
특히 박 감독이 연출하는 ‘매직’, 거기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국민들의 모습은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큰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서울에서 이날 중부 다낭을 찾은 이현주씨는 “때를 맞춰 온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 축구 열기를 느낄 수 있어 특별했다”며 “쏟아져 나온 오토바이 때문에 호텔 가는 차를 못 잡아 애를 먹었지만, 큰 추억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베트남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은 연말까지 1,8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년 대비 20% 가량 많은 수치다. 사이공투어리스트 관계자는 “축구가 관광산업은 물론 베트남의 역동성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찌민시의 한 국제학교 체육교사 로워(37ㆍ미국)씨는 “매번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가는 이런 모습이 바로 베트남이 성장하고 있음을 증명한다”면서 “SEA게임이 비록 지역대회이긴 하나 이런 성취감은 모든 국민들의 엔도르핀을 끌어올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SEA게임은 태국의 제안으로 미얀마ㆍ라오스ㆍ캄보디아ㆍ베트남ㆍ말레이시아 등 6개 동남아 국가들이 동남아반도(SEAP)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동네 게임’이다. 1977년 필리핀ㆍ브루나이ㆍ인도네시아 등이 합류했고 현재 아세안 10개국에다 동티모르까지 11개국이 우승컵을 놓고 다툰다. 월드컵 등 주요 게임에 끼지 못하는 이들 국가들 입장에선 국력 과시의 수단일 수 있어 하나같이 사생결단식으로 매달린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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