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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고민 학생에 ‘남성적 언어 써보라’ 상담이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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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고민 학생에 ‘남성적 언어 써보라’ 상담이 정답?

입력
2019.12.13 04:40
수정
2019.12.13 09:58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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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상담사 수험서 모범답안에 편견 조장하는 부적절 내용 담겨

부작용 낳는 성적 지향성 바꾸기 학계서 인정 않는 전환치료 흡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청소년을 보호ㆍ지도하는 청소년상담사 국가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는 A(26)씨는 최근 한 면접대비 수험서의 모범답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험생 대부분이 보는 책인데도, 동성애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A씨가 읽은 S출판사의 청소년상담사 2ㆍ3급 면접대비 수험서에는 동성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가상의 고교 3학년 남학생 사례가 등장한다. ‘여위고 얼굴이 희고 잘 생겨 여자 같다고 놀림 받은 적이 있으며, 여러 형태의 야한 동영상을 접하며 일상적 성관계 영상은 시시하다고 여기게 됐다’는 등의 설명도 붙어 있다. ‘이 학생을 어떻게 상담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모범답안으로는 △헬스장에서 근력 키우기 △남성적 언어 사용해 보기 △야한 동영상 보지 않기 등의 방안이 제시돼 있다.

동성애 상담을 다룬 장에서도 편견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 등장한다. 동성애 때문에 고민하는 청소년에게 ‘이성과의 만남이나 동호회 활동을 권장한다’, ‘우정으로 승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등의 대답을 할 것을 추천하고 있다. A씨는 “신체 특성(야윈 체격)이나 동영상 시청 등의 이유로 동성애자가 될 수 있다는 가치판단이 개입돼 있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전환치료를 연상시킨다”며 고개를 저었다.

A씨의 지적처럼 이 책에 나오는 해법은 ‘전환치료’와 상당히 유사하다. 전환치료는 개인의 성적 지향성을 동성애나 양성애에서 이성애로 전환하는 치료법이지만,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고 장기적으로 자존감 저하나 우울증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학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청소년상담사 수험서-박구원 기자/2019-12-12(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청소년상담사 수험서-박구원 기자/2019-12-12(한국일보)

실제 상담계에 종사하는 B씨도 이 수험서 내용에 문제가 있다며 출판사 측에 항의를 했다. 그러자 출판사는 “수록된 문제와 답안은 100% 정답이 아니라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수준”이라며 수정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심리상담계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성 치료 연구 모임인 한국임상심리학회 산하 ‘성 치료 및 수면 연구회’의 서수연 회장(성신여대 심리학과 교수)은 “전환치료의 정의 중 하나가 ‘특정 성적 지향을 다른 것으로 바꾸려는 시도’인데, ‘근력 키우기, 이성 만나기, 우정으로 승화하기’같은 내용은 이런 활동을 하면 성적 지향이 바뀔 수도 있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회장은 “성적 지향으로 차별을 받거나 가족에게 버림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길 수 있는 상황에서, 성적 지향성을 바꾸자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환치료를 둘러싼 논란은 2월 한 상담학회가 일부 동성애를 ‘이상 성욕’으로 분류하며 예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준회원을 영구제명 했을 때도 불거졌다. 제명된 상담사는 “전환치료를 하거나 홍보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문제의 수험서 저자 역시 본보에 “전환치료 개념을 제시하려 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저자는 “청소년은 사회에 대한 선입관과 압박으로 인한 심리적 충격을 많이 받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회 변화에 따라 항의도 들어오는 만큼 개정판에는 내용을 수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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