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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중국 의존의 부메랑, 위협받는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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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중국 의존의 부메랑, 위협받는 표현의 자유

입력
2019.12.12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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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한국외대 학생들이 11월 21일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무단 철거한 학교 당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외대 학생들이 11월 21일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무단 철거한 학교 당국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번 가을, 서울도 홍콩 때문에 뜨거웠다. 홍콩 응원 대자보가 게시되자, 중국 유학생들은 대자보를 훼손하거나 다른 게시물을 덧붙여 무력화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중국 청년의 분노는 당연하고 사리에 맞다”며 유학생을 부추겼다. 중국 학생 비율이 높은 일부 대학은 홍콩 관련 대자보 게시 자체를 금지했다.

이 일련의 사건은 우리가 겪지 못한, 그러나 앞으로 만날 특이한 현상이다. 지금껏 표현의 자유는 개인이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며 쟁취해 온 가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외국 정부와 외국 국민의 압력 때문에 우리 국민이 내 나라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표현의 자유엔 국내ㆍ국제 구분이 없다. 민간단체나 개인이 외국 정부를 비판 못할 이유는 없다. 한국인이 트럼프의 보호무역을 문제 삼거나, 중국인이 한국의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은 자유의 영역이다. 그러나 정부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중국인들은, 외국인이 중국 정부의 홍콩 정책을 비판하는 것 자체를 중국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인다. 갈등은 여기서 시작한다.

반면교사 삼을 수 있는 곳은 호주다. 호주는 안보ㆍ경제 구조가 한국과 비슷하고, 이 고민을 일찍 시작했다. 한국처럼, 호주는 안보에선 핵심 친미국가면서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가장 가깝다.(대중 수출 의존도 호주 38%, 한국 25%) 대학 재정을 중국 학생에 의존하는 점도 비슷하다.

선진국 중 중국 의존도가 가장 높은 호주는 최근 예상치 못한 친중의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중국 측 압력으로 표현의 자유가 훼손됐다는 기사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중국 눈치를 가장 많이 보고, 영향을 크게 받는 곳은 대학이다.

홍콩 민주화를 요구하는 행사는 중국 학생들 폭력으로 얼룩졌고, 일부 대학은 눈치 보느라 홍콩 학생의 송환법 반대 시위를 금지했다. 대만 티벳 위구르 등 영토ㆍ주권 문제만 나오면 과잉 대응하는 중국 학생들 탓에 대학의 자유로운 토론문화가 훼손된다는 우려도 있다.

언론과 정치도 중국 입김을 세게 받는다. 시드니 모닝 해럴드는 중국 태생 억만장자 차우착윙이 유엔 관리를 매수한 의혹을 보도했다가 명예훼손 소송을 당해 2억원 이상을 물어주게 됐다. 그는 중국 이익을 위해 호주 여론을 돈으로 산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호주 언론이 친중 인사들의 압박에 위축된 데는 서방국가 중 가장 강력한 명예훼손법(입증 책임이 피고에게 있다)도 한몫 했다. 중국 출신 부호들은 호주 정치권에 거액을 기부하며 영향력을 확대한다.

학술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이 돈을 무기로 호주에서 은밀하게 영향력을 늘린 현상을 분석한 클라이브 해밀턴 교수의 저서 ‘조용한 침략’(Silent Invasion)은 중국의 명예훼손 소송을 우려한 출판사가 출간을 포기하는 바람에 다른 출판사를 찾아야 했다. 클라이브 교수는 “중국 연구자들이 중국 정부의 비자 거부를 우려해 스스로를 검열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주요국 중 중국 의존도가 호주에 이어 두 번째다. 호주에서 일어난 일은 앞으로 우리가 겪을 일일 수 있다. 쇼비니즘적 해법을 찾거나 무작정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자책골을 넣을 필요는 없지만, 대응은 필요해 보인다.

먼저 ‘바깥의 힘’으로 인해 우리의 표현의 자유가 직접적으로 침해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중국에 의존해 돈을 버는 일엔 꽤나 비싼 대가가 따른다는 점 말이다. 이미 현상이 시작된 대학사회에 대한 실태 파악도 필요하다. 교수의 수업권, 학생의 표현의 자유, 외국 학생이 자신의 고국 사정을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보장되는지 유심히 살펴야겠다.

두툼한 지갑과 강한 고집을 갖춘 상대에 맞서 ‘말할 권리’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준비, 각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영창 사회부 차장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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