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지역의 한 대형병원이 수 년간 간호사 수를 부풀려 건강보험 급여를 더 타냈다는 전직 병원 직원의 폭로가 나왔다. 제보자 폭로에 따른 보건당국 조사에서 부정 수급 사실이 적발되는 등 제보자 주장을 뒷받침 할 증거가 있었지만, 보건당국과 경찰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제보자는 “당국의 소극적 자세에 진실이 묻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간호사 수 부풀리기 의혹 제기
문제의 병원은 경북 문경시의 의료재단에 속한 A종합병원과 B요양병원이다. 제보자 권모씨는 1996년부터 2016년까지 20년 가까이 두 병원을 오가며 일했다. 권씨는 퇴직 전 수년 동안 요양병원에서 원무과장으로 일했기 때문에 병원 살림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권씨는 퇴직 후 재단 이사장과 병원장 등을 국민건강보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B요양병원이 간호사 수를 실제보다 부풀려 건강보험공단 요양급여를 더 타냈다는 게 권씨 주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요양병원의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간호사 1인당 담당하는 환자 수가 적을수록 병원에 요양급여를 더 주는 간호등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B요양병원이 이를 악용해 실제론 A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일부를 B요양병원에서 일하는 것처럼 보건당국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일부 요양병원들이 이런 방법으로 요양급여를 부당하게 받아오다가 당국에 적발된 사례는 드물지 않다.
권씨의 고발 계획을 알게 된 B요양병원 측은 건강보험공단에 부정수습 사실을 먼저 자진 신고(부정수급 금액 약 4억7,600만원)해서 23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과징금 부담의 여파로 B요양병원은 2017년 폐업해 현재는 A병원만 남아 있다. 그러나 실제 부정 수급은 2008년부터 2016년까지 8년간 이뤄졌음에도 병원 측이 부정 수급기간을 3년(2013~2016년)으로 축소 신고해 나머지 5년치 부정 수급에 대해선 행정 처분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권씨 주장이다.
◇제보자 “증거 많은데 당국 소극적”
권씨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B요양병원에서 일하던 중 2015년 2월 과로에 따른 뇌경색으로 장애 판정을 받은 간호사 C씨의 권익위 진술 조서를 들고 있다. 진술 조서에 따르면, C씨는 지난해 8월 17일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2011년 당시 B요양병원에서 근무한 것으로 기록된 간호사 중 10명이 실제론 A병원에서 일했다고 증언한다. 권씨는 간호사들과 대화한 2015년 12월 휴대폰 문자메시지 내용도 공개했다. 문자를 보면 서류상 B요양병원 근무자로 기록돼있는 한 간호사는 “2008년부터 (A 병원 주사실에서) 근무했다”고 권씨에게 말하고 있다.
특히 권씨의 권익위 진정에 따라 실시된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공단의 재조사 과정에서 B요양병원의 간호사 부풀리기 의혹이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 B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것으로 신고됐던 간호사가 한동안 A병원의 건강검진 업무에 종사한 사실이 발각돼 복지부가 요양급여 1,820만1,000원을 환수 조치한 것이다.
그러나 보건당국은 권씨의 제보 내용을 전부 인정하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보험평가과 관계자는 “재조사에서 드러난 부정수급은 환수 조치했지만, 제보자 주장대로 5년 내내 부정 수급을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재조사에서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부정 수급 사실을 인정하려면 근무기록 서류와 같이 좀더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한데, 권씨가 내놓은 증언이나 문자 기록 등의 부수적인 증거만으론 행정 조치가 어렵다”고 전했다. 판례를 검토한 결과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행정처분에 나섰다가 법적 분쟁에 돌입하면 보건당국이 패소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경찰도 권익위에서 사건을 이첩 받았지만 2017년 검찰의 무혐의 결정을 근거로 별다른 추가 조사는 벌이지 않았다.
권씨는 “당시에 근무했던 간호사와 의사들을 찾아가 확인해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인데도 당국이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며 명백한 부정 수급에 손을 놓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권씨는 권익위 조사 결과를 수긍하기 어렵다며 이의 신청을 했다.
◇병원 “제보자, 복수심에 무리한 주장”
A병원은 권씨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병원 측은 “권씨는 병원 근무 당시 인사에 불만을 품고 퇴사한 이후 복수심에 사로잡혀 무리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며 “병원 사정이 많이 어려워졌고 직원들은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라고 밝혔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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