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의 ‘베트남 축구’ 본 외국인들 반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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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의 ‘베트남 축구’ 본 외국인들 반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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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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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거주 외국인들 “베트남이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

베트남 또 ‘잠 못 이루는 밤’ … 새벽 출근시간까지 부부젤라 소리

10일 오후 필리핀에서 열린 SEA 게임 축구 경기에서 베트남이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3대 0으로 대승하자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금성홍기와 부부젤라를 사고 있다. 이날 감격을 배가시키는 도구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박항서호가 동남아시안(SEA) 게임 축구에서 10일 인도네시아를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자 베트남이 또다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다. 2년 전 박 감독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간간히 접하던 승리 장면이었지만, 이날만큼은 또 달랐다. 동족상잔의, 베트남전(1975) 이후, 통일베트남이 SEA 게임에서 축구로 금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베트남은 이로써 역내에서 입지를 또 한번 더 다지게 됐다.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한 베트남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를 확보한 베트남은 내년에 아세안 의장국, 유엔안보리 이사국을 동시에 맡으며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외교력을 발휘하게 된다.

호찌민시 타오디엔 지역의 한 상가의 식당 종업원들도 근무지를 이탈해 축구 경기를 관람하다, 베트남이 골을 넣자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2019-12-11(한국일보)

결승전 경기가 펼쳐지던 10일 오후, 베트남 경제수도 호찌민시에서도 외국인이 밀집한 2군 타오디엔 지역도 후끈 달아올랐다. 몇몇 상가들이 공동으로 마련한 대형 스크린 앞으로 놓인 테이블은 일찌감치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차지했다.

평소보다 좀 붐빈다는 것만 제외하면 평온한 여느 저녁 풍경과 다름 없던 호프집은 전반 39분 도훙중이 올린 프리킥을 도안반하우가 헤딩으로 선제골을 뽑아내자 반전했다. ‘벳남 꼬올렌!’(베트남 파이팅)이 연신 터져 나오고 부부젤라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웃 식당과 호프집에서도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호찌민시 타오디엔 지역에 자리잡은 한 호프집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던 각국의 주재원들이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열광하고 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2019-12-11(한국일보)

국제학교 체육교사 로워(37ㆍ미국)씨는 “이런 모습이 바로 베트남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며 “SEA 게임이 비록 작은 지역대회이긴 하지만, 이런 성취감은 모든 국민들의 엔도르핀을 끌어올린다”고 평가했다.

실제 SEA게임은 태국의 제안으로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6개 동남아 대륙 국가들이 ‘동남아반도(SEAP) 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동네 게임’이다. 하지만 1977년 필리핀,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등이 합류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됐다. 현재 아세안 10개국에 동티모르가 포함된 11개국이 다투는 대회로, 올림픽과 월드컵에 끼지 못하는 이들 약소국가들이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대회다.

인도차이나반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자리잡은 랜드마크 81빌딩도 이날만큼은 상층부 외벽 조명을 붉은색으로 했다. 금성홍기를 든 오토바이들이 달리는 거리는 왕복 8차선 대형도로로 호찌민 시내로 이어진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베트남 외교부 남부 분소인 호찌민시 외교국 소속의 외교관 응우옌 린(35)씨는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 역사를 2년 가까이 계속 새로 쓰고 있다. 굉장한 감독”이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대표팀은 작년 1월 중국에서 열린 23세 이하(U-23) 축구대회에서만 강호 호주를 꺾고 ‘처음’으로 8강에 진출했고, 피파랭킹 80위권의 이라크를 승부차기 끝에 제치고 동남아 국가 ‘최초’로 4강에 진출했다. 또 카타르를 꺾고 ‘사상 첫’ 결승 진출, 그 뒤 이어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AFF 스즈키컵 등 경기 때마다 기록을 만들어 내며 1억 베트남을 열광시킨 바 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계속되는 선전이 베트남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목소리도 나왔다. 호찌민 도심 1군 지역에 고급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마이 리엠(28)씨는 “베트남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며 “이런 승리 이후에는 베트남 손님 비율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온 국제학교 교사 루이씨는 “외국인들의 투자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의 축구 응원 장면은 베트남에서도 유명한 관광 상품이 됐다. 호찌민을 찾은 외국인들은 머리띠를 두르고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열광한다. 사진은 지난 11월 19일 월드컵 지역예선전, 베트남-태국 경기가 있던 날 오후 호찌민시 응우옌 후에 거리 풍경.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반세기 전 베트남전 승리로 통일은 이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남북 간 심리적 ‘분단’은 베트남이 앞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 하지만 하노이 출신의 회계사 투이(33)씨는 “함께 경기를 보는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데 같은 베트남 사람들끼리 뭉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필드를 뛰는 선수들이 베트남 전국에서 선발됐다는 사실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급식당주 리엠씨는 “축구는 베트남 사람들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 일하는, 각국에서 온 모든 사람들을 결속시킨다”며 ‘어메이징 박항세오’를 연발했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대표팀이 인도네시아를 3대 0으로 완파하자 거리에는 오토바이를 탄 시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승리를 예상하고 길가에 자리를 잡은 국기 금성홍기와 부부젤라 상인들은 대목을 잡았고, 하나된 시민들은 밤 늦게까지 붉은 기를 휘날리며 밤새도록 질주했다. 11일, 이튿날 새벽 출근길에도 부부젤라 소리가 들렸을 정도다.

월드컵 지역예선전, 베트남-태국 경기가 있던 지난 11월 19일 오후 베트남 호찌민시 응우옌 후에 거리 풍경. 관중들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월드컵 지역예선전, 베트남-태국 경기가 있던 지난 11월 19일 오후 베트남 호찌민시 응우옌 후에 거리 풍경. 관중들 뒤로 멀리 있는 건물은 호찌민시 인민위원회(시청) 청사, 그 앞으로 국부, 호찌민 전 주석의 동상이 서 있다.

호찌민=글ㆍ사진 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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